21세기 도시경관: 스펙터클과 도시적인 것 사이에서

Seoul Urban Art – Conference 
16-17 October 2019 (16 Oct. 16:00)

Between Spectacle and the Ur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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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건축 양식과 도시경관

메트로폴리스 즉 대도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서울은 식민지하에서 근대 메트로폴리스로의 전향을 맞았다. 메트로폴리스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갖가지 산업•상업 활동을 일으키는 곳, 군중 속에서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곳 등으로 정의된다. 그러한 근대도시 메트로폴리스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메갈로폴리스, 메타시티 등으로 변화, 확장되어왔고, 서울은 그러한 대도시의 변화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류학자 제임스 홀스턴은 브라질리아 시를 예로 들어 근대 도시 기획이 어떻게 도시 경관에서 ‘형상과 배경을 전복’시키고 전통적인 도시 형식과 단절을 야기했는지에 관해 코멘트한다. 전통적인 도시 경관에서는 견고한 건물군들 즉 사적 영역이 배경을 이루고, 그 위에 거리나 광장 같은 빈 공간이 공공공간을 형성했다. 홀스턴은 근대도시화 되면서 ‘배경/견고성/사적공간’과 ‘형상/공터/공공공간’의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 대한 전통적인 인지 방식이 작동하지 않고, 모든 건축 요소들이 제각각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하며, 개인 건축가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고, 각각의 구축물들은 ‘미와 속도감’을 찬양하면서 인간과 기계를 무한한 관계의 지평으로 이끌어간다는 주장이다.

서울은 브라질리아와 마찬가지로 압축적 근대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이와 유사한 도시경관의 변화 과정을 거쳐왔다. 전통적인 풍경에서는 사적영역이 도시를 평평하게 메우며 배경을 형성하고 그 사이의 빈 공간을 공공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던 데 비해 근대 도시에서는 공공영역을 배경으로 마천루들이 곳곳에 솟아오르며 도시의 얼굴을 이루어 서로 경합하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사적공간이 ‘형상’으로, 공공공간이 ‘배경’으로 전도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1세기 전환기에 한층 더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제가 확산되면서 건축 및 도시계획을 포함한 문화계에도 그 여파가 밀려들었다. 건축 분야에서는 소위 스타 건축가들(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렌초 피아노, 노먼 포스터 등)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양식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되었다. 미술•건축•디자인 비평가 할 포스터는 이러한 건축 스타일을 ‘글로벌 양식’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스마트 도시로의 급속한 변화를 꾀하고 이를 도시 브랜드로 발전시키려는 개발국의 도시에서 더욱 눈에 띄게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 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MVRDV의 서울로 등을 대표적인 글로벌 양식의 랜드마크 경관/건축 디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경관/건축 디자인은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과 맞물려 있는 문화경제적 현상으로, 도시 측의 요구와 글로벌 경관/건축 디자인 기업들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렇듯 랜드마크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건물들이 ‘도시의 얼굴’로 등장했고 그 밖의 공간들은 도시의 배경으로 물러났다. 물론 이 건축물들 중에는 공공기관과 사기업 건물들이 혼재해 있고, 그 밖의 공간에도 역시 사적공간과 공공공간이 뒤섞여 있어서 이 두 영역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 건축물들은 사기업 자본으로 건축되는 경우가 다수이므로, 대체로 대규모 사적 자본이, 건축물의 형태를 빌어, 도시의 얼굴로 부각되고 그 외 일상의 공공영역이 배경으로 물러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사적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개인 및 기업의 사적공간이 거대한 도시의 얼굴로 떠오르고 공공공간은 그 사이 영역으로 뒤에 남겨진 형국이다. 도시는 대체로 얼굴 위주로 기획과 개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뒤로 밀려난 공공공간은 비체계적으로 흩어진 모습을 갖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건축물 자체가 점차 하나의 미술품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건축 디자인이 시각적 스펙터클이 되면서 미술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경향을 반영한다. 할 포스터에 따르면 21세기 건축은 생산 프로세스와 양식 면에서 모두 글로벌 시장 경제의 영향을 받았고, 시각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도시의 스펙터클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시각예술이 공간화되어 가는 경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말 이후 서구의 미술, 특히 미니멀리즘에서 개념미술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시각예술의 공간화는 회화, 영상 분야에서도 나타났고, 공간 예술인 조각 분야에서는 미술품화 되어가는 건축과의 대결 구도를 고민하는 상황을 맞았다.

 

도시적인 것: 사회성의 매개 공간

공공공간은 대중 혹은 시민들의 접근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한 마주침이 발생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도시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city) 개념을 ‘도시적인 것’(the urban)으로 변화시키는데, 여기에서 물리적 형태가 없는 ‘도시적인 것’은 ‘공간(space)’으로 변형된다. 다시 말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가 상대적으로 비형상적이고 어디에나 편재한 공간 개념으로 변화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도시적인 것’ 및 ‘도시 공간’이 사회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율적이면서도 우연한 마주침이 발생하는 ‘공공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서는 차별적 분리(separation and segregation)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마주침은 불꽃처럼 반짝이고 빛을 방사하듯 작용하는, 열린 포럼에서 연합하는 다수의 참여자들에 대한 표현이다. 또한 르페브르는 정치적인 기능성이란, 현실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실험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리하여 다른 세계(우리 안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상의 실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주침의 정치는 도시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 야기된 경제적 위기의 시대에 이와 맞물려 있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아랍의 봄’(2010), 뉴욕 월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점거’ 운동(2011), 홍콩의 우산 혁명(2014), 한국의 촛불 혁명(2016) 등은 마주침의 정치가 일어나는 공공공간의 역할과 작용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예들이다.

도시학자 앤디 메리필드는 ‘개발’(development)이 건물의 구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과 사람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공간의 문제는 ‘감성의 풍경’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집단적 부딪힘을 통한 행동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풍경을 일컫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사람들을 둘러싼 물리적, 사회적 풍경은 일상적 삶의 본질을 형성한다. 요컨대 공간과 장소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도시성을 이루는 것은 사람들, 이들 사이의 마주침, 대화, 감정 표현과 행동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공공공간은 국가나 시 정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구역이 아니라 소유권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운영, 관리, 사용하는 영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공공공간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이들의 공통개념(common notions)을 표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공공적인 것’은 공통의 표현을 위한 소통의 통로가 열려 있고 협의가 가능하고 논쟁이 가능하며 타인을 바라본다는 점—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사회적 포지셔닝을 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정치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적인 것’의 표현은 도시적 영역(the urban realm)에서 더 크게 들리고 강렬하게 감지된다.

요컨대 사람들의 마주침과 논의, 협의의 행위와 그 과정이 공공의 공간을 만든다. 그렇다면 역으로 공간이 이러한 마주침, 논의, 협의를 고무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을까? 아울러 공공미술은 도시적인 것을 만드는 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기획에 의해 공공공간을 구축하고 공공미술을 설치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마주침, 논의, 협의를 고무시키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도시적인 것을 구현하는 길이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공간, 그 공간을 제공하는 물리적 공간의 구축이어야 하며 공공미술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획, 설치되어야 한다.

21세기, 변화된 도시경관 속, 공공미술—공공장소에 시각예술 작품을 설치하는 제도 포함—은 스펙터클화 되어가는 건축물과의 관계 측면에서 조형적으로도 재고되어야 하고, 높아진 시민들의 문화 인식을 고려하여 제도의 목적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재점검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한편으로 자본가의 사회적 책임과 기여의 차원에서 일정 공간을 공공영역으로 할애하는 것이라면, 보다 본질적으로 그 공간은 도시적인 것에 근거한 공공공간의 실현이어야 하고, 그것은 타인과의 마주침, 논의와 협의가 가능한 민주적 공간의 구축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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