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or’s afterword» Adhocism: A Mode of Making, a Mode of Life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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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호키즘: 임시변통과 즉석 제작의 미학>
찰스 젠크스, 네이선 실버 / 김정혜, 이재희 옮김
MIT 출판사 증보판 2013 (1972)
역자 후기 (현실문화, 2016)

2013년, 초판이 출간된 지 40년 만에 MIT 출판사에서 증보판이 나왔을 때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는 소비자가 스스로 직접 물건을 만드는 두잇유어셀프(Do It Yourself)나 맞춤형 디자인이 부각되는이 시대에 필요한 개념을 《애드호키즘》이 시대에 앞서 예시했다고 평했다. 젠크스는 표준화된 근대 대량 생산과 소비에 대한 대안으로 스스로 만들기의 필요성을 상기시키고 무엇보다 개인이 자기 환경을 창조해야 하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즉각적인 필요를 자각하고 애드호크적인 부분들을 결합함으로써 개인적인 것들이 유지되고 그 자신을 초월한다. 이렇게 개인은 자신의 환경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감으로써 감각적인 박탈의 악순환을 끊을 수있다. 무반응적이고 텅 빈 현재 환경은 대부분 인간을 백치화하고 세뇌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p. 23) 나아가 그는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일반인의 디자인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은 정부가 이를 대신하는 것 만큼이나 문제가 있으며, 삶의 환경을 조성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돌보는 인간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가로막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만들기의 방식, 삶의 방식으로서의 애드호키즘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언급되는 찰스 젠크스가 왜 1972년 당시에 애크호크(ad-hoc) 즉 즉석에서 임시변통으로 된 것에 집중하고 애드호키즘이라는 용어를 창안하여 중요성을 강조하였는지, 포스트모더니즘과 애드호키즘이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무엇보다 궁금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각예술과 건축 분야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시각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모더니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개인의 자율성을 앞세운 추상 미술에 대한 비판, 그리고 페미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논의와 맞물리면서 사회 구조 비판과 재현에 대한 비판으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능중심주의적인 단순성에 집중한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과거 양식들의 절충적 스타일, 고전주의 양식의 패러디, 파사드의 이미지화 등이 시도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 과정과 형식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지만 두 장르 모두 공통적으로 이성과 논리, 표준(norm), 위계 질서, 결정주의적 사고에 기초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한편 애드호키즘은 모더니즘 비판을 포함하면서 보다 광범위한 의미의 ‘만들기’와 ‘생성’의 본질에 대한 탐색과 실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애드호키즘은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이데올로기나 ‘-주의(-isms)’처럼 통합된 세계관으로 제시되지 않는다”(p. 35)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젠크스가 논의하는 애드호키즘은 시대적 양식(style)이라기보다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만들기의 방식(mode of making), 나아가 삶의 근거를 구축하는 생성과 생산 방식에 더욱 가깝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주론(2장), 진화론(3장), 혁명(6장)에 관한 이야기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이 책에 포함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풀린다.

 

구축하는 인간

“R. D. 랭(R. D. Laing)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과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변 환경을 조정하고 형성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p. 23)

2013년, 초판이 출간된 지 40년 만에 MIT 출판사에서 증보판이 나왔을 때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는 소비자가 스스로 직접 물건을 만드는 두잇유어셀프(Do It Yourself)나 맞춤형 디자인이 부각되는 이 시대에 필요한 개념을 《애드호키즘》이 시대에 앞서 예시했다고 평했다. 젠크스는 표준화된 근대 대량 생산과 소비에 대한 대안으로 스스로 만들기의 필요성을 상기시키고 무엇보다 개인이 자기 환경을 창조해야 하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즉각적인 필요를 자각하고 애드호크적인 부분들을 결합함으로써 개인적인 것들이 유지되고 그 자신을 초월한다. 이렇게 개인은 자신의 환경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감으로써 감각적인 박탈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무반응적이고 텅 빈 현재 환경은 대부분 인간을 백치화하고 세뇌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p. 23) 나아가 그는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일반인의 디자인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은 정부가 대신하는 것 만큼이나 문제가 있으며, 삶의 환경을 조성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돌보는 인간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가로막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p. 65) 이 대목에서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 같은 견해는 종종 전문가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현장에서 입지가 좁아질 우려는 낳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전문가의 역할을 스타일이나 형태로서의 디자인을 제시하는 것에서, 개인이 삶의 환경을 탐색하고 조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일로 생각하면 건축과 디자인은 보다 유연하고 다양하게 영역을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표준화되고 동질화된 근대 디자인 환경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만드는 인간’은 4장 소비자 민주주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변화가 21세기 지금 이 시점에 보다 눈에 띄게 일어나게 된 데는 기술의 발전과 환경 문제에 대한 자각과 인식의 변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건축 디자인에서 파라매트릭스, 비결정적 알고리듬을 이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편화되면서 하나하나 다른 형태의 제품과 구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3D 프린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는 맞춤형 개별 제작과 소비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한편 수 십 년 간의 소비시대를 지나는 동안 막대한 양의 자원이 소모되고 폐기물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새로운 소비 방식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더 사용이 가능한 버려진 제품이나 부품을 재활용하는 것은 가장 일차적이면서도 자원의 재가공 비용이 들지 않는 매우 효율적인 대안적 소비 방식이다. 젠크스는 1960년대에 소비사회에 맞서 저항적 반문화 운동을 펼친 히피와 이피!(Yippie!)로부터 역사적 기원을 찾으면서, 재활용이 가능하고 또 재활용해야 하는 것의 범위를 제품에서 나아가 물리적 도시 공간과 비물리적 미디어 공간으로까지 확대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과 공간이 재활용되었을 때 빈곤 문제를 얼만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면서 환경 문제가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한다. 무엇보다 용도 폐기된 공간, 시간대에 따라 사용이 중지되는 공간,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사유공간)을 활용하는 방안 등은 갈수록 심화되는 도시 주택 문제나 공간 사용 불평등 문제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중대한 제안이다(물론 사유 공간을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로 남아 있다). 아울러 한 사회의 정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가 거의 사유화 되어가는 현재, 미디어의 ‘시간’(공간 개념으로서의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고 공공의 목적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지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비결정성과 결합 가능성

“‘무엇이든지 언제나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 창조적 행위에 내재하는 해방의 슬로건 … ” (p. 23)

‘바로 이 즉각적인 필요와 목적을 위하여’ 현재 가용한 자원을 적합하게 사용하는 방식을 뜻하는 애드호키즘은 자원에 결정적인 단일한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시 말해 자원의 용도와 사용 목적이 열려 있는 만큼 다양성이 허용된다는 의미이다. 대상의 용도와 기능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컨텍스트에 따른 의미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젠크스는 자체 의미의 비결정성에 더욱 방점을 둔다. 2장에서 그는 다원적 우주론을 통해 비결정성 및 불확실성의 의미와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모든 지식은 다원적인 해석을 열어두어야 지식의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최종 목적이 변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어야 다원주의와 정치가 자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논의를 사회 정치 단위로 확장시킨다. (p. 33~36)

젠크스는 재활용뿐만 아니라 모든 만들기, 창조와 구축 자체를 용도 변경과 결합을 통한 재탄생으로 바라본다. 모든 것은 백지 상태를 의미하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록과 역사가 새겨진 판 즉 ‘타불라 스크립트’(Tabula script)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3장에서 그가 진화론을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젠크스는 외적 조건에 의해 변이가 일어난다고 보기보다 내적 선택의 과정이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시각을 견지한다. 모든 형태에는 한계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제약적 잠재성’이 있기 때문에 각 하부조직들이 상호 연관성 안에서 선택적으로 결합하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대전제는 결합을 통해 새로운 변형을 이룰 하부조직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이다. 과거 위에 새로 쓰고 덧쓰기를 반복하는 이러한 진화 과정을 젠크스는 또한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지우고 덧쓴 고대 문서)의 의미를 빌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팰림프세스트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아마도 5장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도시’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집단의 다이내믹과 문화가 어우러져 합성체를 이루고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축적되는 공간. 그러나 근대의 대도시들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도시들이 기존의 공간을 백지 상태로 만든 후에 전체적인 개발을 시행하면서 도시 내부의 다양한 자발적 성장 기능에 제약을 가하고 소규모 질서를 파괴해오고 있다. (p. 33, p. 81) 젠크스는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인간이 지속적인 시공간적 흐름 속에서 도시 공간을 분절적으로 경험하는 점, 그리고 복합성의 의미가 혼돈이나 비결정적인 것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는 점을 재차 역설한다. 도시의 복합적 질서를 지우고 백지 위에 조직화 된 뉴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결코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전체주의적인 기획이 도시라는 사회적 공간을 유지하는 상대적 질서를 종종 가로막는 이유는 도시가 분절적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유기적 합성체이기 때문이다.

 

모더니즘건축 비판

“현재의 환경은 시각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되고 기능적으로는 복합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 상반되는 이중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사물과의 감성적 교류나 사물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사라져간다.” (p. 73)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비판은 젠크스가 애드호키즘을 주장하는 목적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그의 건축은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개념과 스타일로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젠크스는 모더니즘 건축 및 디자인과 애드호키즘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를 문제의 해결 방식에서 찾았다. 미스를 포함한 근대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이 구조적, 형태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를 말끔하게 덮어 씌우고 감추려 했던 데 비해 일부 다른 디자이너들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오류가능성과의 합의점을 찾고 불일치성을 조화와 동등한 수준의 형이상학적 본질로 바라봤던 점을 지적한다. (p. 77) 현실적인 한계(주로 자본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부조화를 수정하거나 감추지 않고 조화와 동등한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종의 관점의 변화이자 나아가 세계관의 변화이기도 하다. 상충하는 까다로운 문제 앞에서 현실적 한계를 정직하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기술이 곧 표현이 될 수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젠크스의 주장이다. 여기에서 장식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장식은 문제(라고 판단되는 것)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적인 형태로 외화 될 수 밖에 없는 내재적 이유의 표상이므로, 본질적인 수행의 목적 즉 기능(function)이 외화된 형태(form)와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장식이 곧 기능 없는 형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서는 모더니즘 건축에 비해 장식적 요소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매끄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기능적으로 의미 없는 개입이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에서 부딪힌 구조의 물리적 제약이나 사회적 혹은 경제적 한계를 말해주고 축적된 시간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는 건축사와 디자인사를 백지 상태에서 이루어진 완결된 형식과 양식의 발전사가 아닌, 만들기 방식(mode of making)과 삶의 방식으로서의 만들기(making as a mode of life)의 집적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려 있던 건축가와 디자이너, 그들의 작업이 지니는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환경, 구축 환경, 사회적 환경의 비판적 진화

“혁명을 사회적 변화의 엔진이라는 의미에 국한하기 보다 ‘자연적 프로세스’(natural process) 또는 최소한 어느 사회에서나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p. 92)

MIT 증보판 서문에서 젠크스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타리르 광장에서 나타났던 애드호크적 문화와 공공 영역을 사례로 언급하면서 애드호키즘이 사회적 단위에서 가지는 의미, 정치적 다원주의와 애드호크적 혁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것은 6장에서 그가 왜 역사적인 혁명들의 전개와 실패의 과정을 언급해야 했는지 그 의미를 현재 시점에서 재확인시켜준다. 6장에서 그는 권력과 물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역사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속류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혁명 사례를 비판하지만, 여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정치 조직(누구나 애드호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와 형태)과 공공 영역은 사회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책 전체를 통해 젠크스는 자연, 기계, 사회를 유비 관계에 놓고 애드호크적인 결합을 통한 진화 과정을 설명해나간다. 3장에서는 자연 환경-구축 환경(사물/기계/공간)이 타불라 스크립트 상태에서 선택적 결합을 통해 새롭게 생성, 전개된다는 점을 전체론적인 힘의 결정론에 도전하는 비판적 진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앞서 언급했듯이 6장에서는 사회가 혁명이라는 변화의 장치를 통해 어떻게 역사적 진화를 꾀해왔는지를 조명한다. 이러한 유비 관계는 자연적 생태, 사회적 생태, 인간의 정신적 생태를 가로지르는 횡단성(transversality)을 전제로 한다.

한편 젠크스는 새로운 서문에서, 근대기에 물류 수송을 위해 사용되었다가 용도 폐기된 고가 철로를 21세기에 새롭게 공원으로 개조한 뉴욕의 하이라인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애드호키즘 건축 디자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언급한다. 하이라인의 디자이너들은 수 십 년간 방치된 철로 위에서 자라난 식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휴식과 레저 공간을 만들고 이 구조물과 주변 환경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등 건축과 경관디자인 면에서 좋은 참고 사례를 이루어냈다. 젠크스는 이렇게 하이라인이 만들어낸 역사의 팰림프세스트적 결합과 애드호키즘적인 건축적 성과에 대해서는 적절한 분석과 평가를 내 놓은 반면, 그 후에 발생하는 환경적 생태와 사회적 생태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2009년 처음 공개된 이후 하이라인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면서 주변의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켰고 이로 인해 현재 일부 임대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 개발로 인해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이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이라인처럼 근대 산업 사회의 유휴공간을 새로운 용도로 되살리는 경우 공간의 [애드호키즘적인] 사용 가치보다 교환 가치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가속화된다. 이는 건축과 도시 경관 디자인의 경우 특히 자연 환경과 구축 환경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환경에 미치는 영향 관계까지 가로지르는 횡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애드호키즘 개념의 해체와 재구성

뒤 이어 네이선 실버는 애드호키즘을 과연 하나의 의미로 정의할 수 있을지, 여러 의미가 통합된 개념인지, 개념이라 하기 부적절한 것은 아닌지까지 의문에 의문을 이어가며 앞서의 논의를 다시 헤치고 펼쳐놓아 다시 새로운 접근으로 유도한다. 그와 동시에 애드호키즘 개념의 목표와 양상, 각 예술 분야에서 나타나는 애드호키즘의 감수성에 대하여, 그리고 시장과 도시라는 구체적인 삶의 조건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집요한 분류, 분석, 체계화를 통해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다.

먼저 실버는 애드호키즘을 삶의 환경 도처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으로 시선을 돌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애드호키즘적인 해법에 이끌리는 성향을 전제하고 새롭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이상적이지도 않은 상황에도 매우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디자인을 문제 해결 과정이나 문제 제기 과정이라고 보는 관점을 훌쩍 뛰어 넘어 상황을 문제시 않을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을 이야기한다—심지어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를 인용한다. 애드호키즘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상태를 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개인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만큼 몰입하여 어느 정도의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는가라는, 인간 행위와 적응력의 총체적 최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무위’와 ‘대처’를 친인척 관계로 보기도 한다.

인간 사회는 (적어도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해 온 근대 이후) 사전 계획 또는 디자인에 의해 행동할 것을 권해왔고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효율적인 가치를 앞세워 패턴화 됨에 따라 규범으로 자리잡아 변용의 가능성을 좁혀왔다. 실버는 바로 이 공식화된 형식과 절차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에 채택되는 것이 애드호키즘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가지는 비공식적 파괴력, 통상적 노력에서 벗어난 자유의 의미를 역설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현실에서 정해진 결과는 없으면 분명한 것은 불가피성,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가능성,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뿐이고 바로 그 때문에 실험 행위가 가능해진다. 특정한 목표치나 형태를 예상하지 않고 행해지는 애드호키즘은 본질적으로 완벽을 향해가지 않고, 가능한 최선을 절합하는 점에서 절충주의적인 성격이 나타나기 때문에 간혹 둘 사이에 혼돈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실버는 절충주의를 애드호크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켜 이해하기를 제안한다.

한편, 애드호키즘의 또 다른 양상으로 맞춤형 디자인을 예로 든 점은 주목할 만하다. 맞춤형이 애드호키즘이 될 수 있는 것은 손에 잡히는 재료로 급조하여 긴급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원하는 대로 사양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는 원리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대충이나 마구잡이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표준 사양의 호환성을 면밀히 계산하고 상호 호환되는 부품들에 대한 정보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맞추었을 때 나오는 최적성이다. 옛 자동차의 원형을 살리면서 최신 부품을 적용해 직접 조립하며 만드는 핫 로드(hot rod)는 소비자가 직접 만드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개인에게 최적화된 사물 환경을 조성한다. 이 점에서 이런 실행은 오늘날 디자인에서 다시 중요하게 논의되는 만들기(개인적 실천 행위)와 맞춤형(제작 방식) 두 가지 관점에서 모두 재고해 볼 수 있다.

연극, 영화 문학, 언어, 미술, 건축 부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크호키즘적인 방식과 그것들이 불러 일으키는 감수성에 대한 논의는 애드호키즘을 시대뿐만 아니라 분야의 경계를 가로질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저자가 꼽는 애드호키즘적인 감수성, 예컨대 예측불허에서 오는 놀라움이나 계산된 자연스러움, 혐오에 대한 욕망과 향수 등은 그 자체로 애드호키즘이 무엇인가를 말해줌과 동시에, 그것이 궁극적으로 숭고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미학과 쾌를 전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쩌면 위트를 내포한 (누)추함은, 예상치 못한 형태가 야기하는 우연함이나 놀라움과 별개로, 일상에서 실행적 애드호키즘으로 늘 함께 하기 때문에 묘한 향수로 이어지는 지도 모른다.

 

애드호키즘 그리고 현재

두 저자가 제안한 시장과 도시의 애드호키즘은 다른 어떤 역사적 사례보다도 현재 우리의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시장의 애드호키즘은 마치 지금의 빅 데이터 개념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상품과 시장 정보를 색인화하고 정보를 무한히 데이터화 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것을 ‘하드웨어 슈퍼마켓’으로 이름 붙여 새로운 형태의 물리적, 정보적 도시형 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것은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현재 네트워크 사회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데이터 형태화 대단히 흡사하다. 이 부분은 애드호키즘을 단순히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무쌍함에 국한되지 않고, 참여적이고 실행적인 것에 기반한 우연성과 무작위성에서 가능한 의외의 파괴성, 자유와 해방의 힘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애드호키즘적인 접근이 가장 절실하게 공감되는 부분은 마지막에 언급된 도시 계획 분야이다. 통제를 내포한 도시 공간 계획이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사용자에게 용도를 강제로 부과해 왔다면, 지금은 시장 경제의 극단에서 공간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관계된 선택권이 점점 더 일부 제한된 계층에 국한되어 가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기회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선택지에 접근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고, 애드호키즘은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는지를 바라보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실버의 마무리 논평은 도시를 둘러싼 디자인이 누구를 향하고 얼마나 급진적으로 확장된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를 시사한다.

40여 년 전 젠스크와 실버가 제기한 모더니즘적 사고와 디자인 접근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기술 환경과 사회 문화적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더욱 정교한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어느 시대에도 결코 주류 사조로 떠오르지 않지만 어떠한 시대에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만들기 방식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서의 애드호키즘을 통해 이들이 제기한 분절화 된 방법들을 현재에 적용하며 종횡으로 엮어가다 보면, 완벽하게 전혀 새로운 해결책이나 대안이 아니라 다양한 변화의 돌파구들을 지속적으로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애드호키즘적인 접근은 소위 문제시 되는 상황을 대체하기 보다 개선하고, 배제하기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디자이너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상황을 추상적으로 사고하기보다 실천적으로 직접 마주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디자이너를 참신성과 창의성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

김정혜

2016.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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