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n and Right Things (kr)

깨끗하고 바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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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도' - 초등 수신서 중에서

‘모발도’ – 초등 수신서 중에서

공교롭게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으로 국내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거의 최고조에 이르렀을 즈음에 맞추어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늘 여러 겹의 S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입국 심사장을 바로 통과한 것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고, 중국 단체 관람객이 없는 한산한 인천국제공항도 낯선 풍경이었다.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19%에 육박하는 치사율을 보인 이 감염병은 올해 국가 경제 성장률을 3%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미디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 메스르 확산국이라는 ‘오명’, 국가 방역 체계의 허술함을 드러냈다는 점을 들어 국가적 ‘망신’이라는 표현도 종종 사용한다. 바이러스 관련 질병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수십만 가지의 질병 가운데 하나이지만 감염병은 청결하지 못한 것, 더러움을 극복, 통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그래서 흔히 국가 차원의 망신으로 여겨진다. 공공의 청결이 관리되지 않는 환경, 특히 하수 시설이 미비하여 세균과 바이러스의 발생이 통제되지 못하는 환경은 근대 이후 줄곧 미개한 전근대적 사회의 면모로 그려져 왔고, 그와 반대로 공공의 청결이 보장되는 사회는 진화되고 근대화된 사회,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사회로 인정되었다. 근대를 지나면서 위생과 청결은 이렇게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 발전에 밑받침이 되는 중대한 통제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대한제국에서는 ‘국민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근대적 ‘수신(修身) 교육’ 즉 도덕 교육을 채택하였는데 당시의 ‘수신’은 전통적 의미의 ‘수신과’ 용어상으로는 동일하지만 내용에서는 서양의 기준에서 근대 시민이 갖추어야 할 ‘도덕’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유교에서 수신의 목적이 ‘개인의 내적 덕성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통해 ‘도덕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면 근대 서양의 수신은 규율과 훈육을 통해 ‘개인의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1] 다시 말해 ‘건강한 신체’는 근대적 소양을 갖춘 인간형 즉 ‘국민이 되는 신체’이며, 이는 ‘국민국가’를 실현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오늘날에는 건강한 신체가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이지만 100여 년 전 수신의 문제는 국가의 건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2]

우리에게는 가족, 사회, 국가에 대하여 반드시 신체의 건강함을 완전하게
할 의무가 있다. 무릇 자신의 건강 여부가 그 이외의 것에 관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도(無道)함이 아주 심한 사람이라 말한다.
[3]

실제로 당시 초등, 중등, 고등교육 수신서에서는 국민이 되는 신체를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불결한 신체에서 청결한 신체로의 탈바꿈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면서 영양이 좋은 음식의 섭취를 첫째 조건으로 권장하였다. 위생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 질병이 발생하고 또 타인에게 전염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4]

신체의 건강함을 위하는 데에 위생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들이
이미 아는 것이다. 위생은 자신 한 몸을 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공중(公衆)을 위하는 데 주의하는 것이 옳다
.[5]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건강한 식사와 식사 도구의 청결을 강조한다.

신체는 식물에 기인해서 기르는 것이니, 반드시 자양이 있는 식물을 선택할
것이다. 폭음과 폭식은 큰 해가 있을 것이니, 깊이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6]

위생의 도는 청결이 제일이다. 무릇 집에 있는 그릇에서 하나라도 청결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옳지 않다.
[7]

요컨대 건강하고 청결한 식사는 위생의 기본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지침의 하나이다. 다시 말해 깨끗한 식사 곧 위생적인 식사는 신체와 정신 건강에 이로우며 개인과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고 깨끗한 식기는 위생적이고 안전한, 즉 바른 식생활을 돕는 도구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깨끗함과 더러움, 위생과 비위생은 개인과 사회의 안전과 위험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개념이자 국민국가에 적합한 국민이 되기 위한 도덕적 이념의 하나이다.

밥, 국, 장 외에 세 가지, 다섯 가지, 아홉 가지의 반찬을 갖추어 차리는 한국 전통의 양반 상차림에는 정갈한 자기 세트의 식기를 사용하는 것이 법도이듯이 서구에서도 상류층의 식사에서는 일체화된 디자인의 식기와 그에 어울리는 숟가락, 포크, 나이프를 규칙과 순서에 맞게 차리고 사용하도록 하였다. 근대 국민국가가 권장하는 상차림은 전통과 서구의 식사 형식이나 내용이 혼합되면서도 이 같은 상류층의 상차림 법도를 바르고 옳은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당시의 부족한 식자원과 상하수 시설 등을 고려하면 서민층의 밥상이 이런 형태로 구현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자기/사기류를 사용하던 시기에는 깨지지 않고 남는 그릇들로 상을 차리게 되므로 밥그릇, 국그릇, 접시, 종지가 모두 다른 종류로 구성되는 것은 기본이다. 놋그릇은 깨질 염려는 없는 대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탓에 서민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깨지지 않고 쉽게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제품이 나오면서 서민들의 밥상이 드디어 근대 사회가 바라던 규격화된 질서를 갖춘 위생적인 차림을 이루게 되었다! 대량생산 덕분에 누구나 반듯하게 만들어진 식기를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각종 부엌 용품 역시 대량생산되면서 (세제가 흔하지 않던 시절) 밀가루로 잘만 닦아 두면 국민국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위생적인 식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로써 얼마나 많은 미적 감성을 상실했는지는 여기에서 논하지 않기로 한다).

여기서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 본다. 식생활은 위생적이어야 하는가? 위생적인 식사가 옳은 것인가? 바른 식생활이 국민국가의 국민이 되기 위한 덕목이어야 하는가? 국민국가의 바른 식사 기준에 따르면 청결하지 않은 그릇에 바르게 차리지 않은 것은 비위생적이고 옳지 않은 식사가 되는 반면 문화와 관습에 따라서는 이것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신이 깨끗하지 않은 식기를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접대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중국에서처럼 금이 가고 깨진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풍족한 삶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오물이란 제 자리를 벗어난 것’ 즉 제 자리로 정해진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깨끗한 것과 오물을 가르는 기준이 주로 근대적 합리주의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문화에서는 불경하게 혹은 불결하게 여겨지는 여성이나 동물의 피가 또 다른 문화에서는 신성함의 상징이듯이, 근대성이라는 기준을 걷어내었을 때 위생과 비위생은 전혀 다른 가치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8] 후기식민주의 이론으로 알려진 역사학자 디페쉬 차크라바티는 보행자와 차량이 뒤엉킨 무질서한 인도의 거리 풍경과 뭐가 뭔지 구분되지 않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한 서양인의 글에 대한 분석에서,[9] 그것이 단순히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이 아니라 근대성의 언어, 근대적 시민과 공공 보건에 대한 의식, 나아가 공공 공간의 관리와 연관된 미적 질서에 대한 의식이라고 해석한다.[10]

근대성은 이렇게 깨끗함과 더러움이 구분되지 않은 모호한 상태, 무질서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 둘을 분명히 구분하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근대 사회의 청결을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더러움을 분리시켜 한 곳에 모아 놓은 대표적인 장소 중에 하나가 바로 쓰레기 매립지이다. 1980~1990년대 국내 최대의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현 월드컵 공원)는 분리수거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전자제품에서부터 음식물 쓰레기까지 한 데 모이는 비위생 매립지였는데, 이곳에서 재활용 물품을 채취하던 수집인들은 버려진 혹은 남겨진 음식을 골라내어 먹던 일을 이렇게 기억한다.

현장에서 먹을 수 있는 게 너무너무 많이 나와요. 특히 겨울에는 (더 많고요).
처음에는 수박 (같은 걸 먹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엔 없어서 못 먹어요.
겨울에는, 특히 명절 지나고 나면 찹쌀떡, 지짐이, 제사 지내고 나면 돼지머리
같은 게 많이 나와요. 88올림픽 때 선수촌에서 나오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남는 음식을) 통째로 다 버리니까 (우린) 호텔 이상으로
잘 먹었어요. (터져서 굴러 떨어진 것은 안 먹고) 돼지머리나 고기가 나오면
잘라서, 얼린 인절미하고 같이 불판에 구워 먹었죠. 그 때 눈이 오면 그런
낭만이 없어요. 허리에 고물자루 차고 진짜 낭만을 즐긴거죠. 부루스타 같은
것만 이용하면 일체 다 해결할 수 있어요.
[11]

이것은 열악한 환경의 삶을 낭만으로 미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을 철저히 구분하는 근대 사회 질서를 거스르며 다시금 더러움을 파헤침으로써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에 내포된 탈근대적 시도, 그리고 그 경계 지점에서 경험되는 (순전히 조작된 기억에 의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면) 공동체성을 말하고자 한다. 청결에서 미적 질서까지 관리하는 근대의 위생 개념은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만들어진 상차림이나 조리 도구의 모양새를 정결한 식문화의 조건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식재료의 바름까지 규제한다. 흠집 있는 과일, 울퉁불퉁하게 웃자란 채소들은 청결과 미적 질서의 기준에서 어긋난 것으로 상품 기준에서 ‘탈락’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틀을 만들어서 특정한 모양과 크기로 자라게끔 길러내기도 한다.[12] 자연의 산물조차 상품 가치를 위해 규격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청결과 위생 그리고 흐트러짐 없는 정형화된 미적 형태 사이에는 깨끗함을 바른 것으로, 더러움을 옳지 않은 것 그래서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으로 구분 짓는 근대의 질서 개념이 자리한다. 그러나 맛을 즐기는 식문화의 중심에는 청결과 정결을 넘어서는 나눔과 공동체성이 존재하고, 식사 도구와 조리 도구는 그러한 행위를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현재 여건에서 사용 가능한 형태로 구현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루이스 설리반의 정의를 ‘형태는 현재 상황[내용, 환경]에서 가용한 재료를 활용한 최선의 기능을 따른다’로 재해석해본다.

 

김정혜 (UCL 바틀렛 건축사/이론 박사과정)
한국국제교류재단 ‘맛 MA:T’ 전시 도록. 서울 (2015), 뉴욕 (2016)

 

Notes
1. 김철운, ‘수신의 근대적 변용: 국가에 유폐된 개인’, <새한철학회> 논문집 (2007), 140쪽.
2. 김철운, 144~146쪽
3.『倫理學敎科書』 卷一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자국 고유의 장점을 보존하며 외래 문명의 정화를 채취하는” 것이 신국민 양성의 궁극 목적임을 분명히 하였다 (‘文明과 武力’, 「大韓每日申報」[1910. 2. 19];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책세상, 2001], 114쪽 재인용).
4. 『中等修身敎科書』卷一, 第九課 「飮食의 攝養」과 第十二課「淸潔」條 9~12쪽 참조; 김철운 147쪽 재인용.
5. 『修身書』, 卷4 第五課 「衛生」, 13쪽; 김철운 148쪽 재인용.
6. 『高等小學修身書』, 第四十八課 「身體」, 34쪽; 김철운 150쪽 재인용.
7. 『高等小學修身書』, 第四十九課 「淨潔」 34쪽; 김철운 148쪽 재인용.
8. 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6 [1966]), 1장, 2장 참조.
9. V S Naipaul, India: A Million Mutinies Now (Calcutta), 1~2쪽.
10. 디페쉬 차크라바티는 이것이 제국주의의 시각일 뿐만 아니라 근대적 정부(식민주의와 후기식민주의 모두)의 언어, 근대 민족주의 언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Dipesh Chakrabarty, ‘Of Garbage, Modernity and the Citizen’s Gaze,’ 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Vol. 27, No. 10/11 [1992. 3], 541~547쪽).
11. 막달레나 수녀(1980년대 후반 난지도 약 3년 거주) 인터뷰 (2014. 8. 26).
12. 아네스 바르다(Anès Varda) 감독의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Les glaneurs et la glaneuse, 20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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