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ganic Minimal

디자인에 있어서 ‘오가닉(organic)’이라 하면 화려한 곡선 문양이 넘쳐나는 19세기 말 아르누보 양식의 자연주의적 형태를 떠올리게 마련으로, 그것은 엄밀한 기하학적 형태와 단순성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흔히 절정에 이른 모더니즘 디자인의 단순한 형식을 미니멀하다고 할 때, 장식적인 곡선을 연상시키는 오가닉과 미니멀이라는 용어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컴퓨터 연산 프로세스를 통한 실험적 디자인의 경우 자연의 원형을 추구하면서 극도로 단순한 형태에 도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나 수학자의 태도로 형상을 분석함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미니멀, 즉 자연친화적인 오가닉 미니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동굴(Grotto). PS1 출품작, 2005 Photo Credit: Aranda/Lasch

시각예술가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에서 형태의 원리를 탐구해왔다. 19세기 프랑스의 건축가 외젠느 비올레 르 뒤크(Eugène Viollet-le-Duc)는 인체의 골격과 관절의 결합 원리를 건물의 구조에 비유하는가 하면 미국의 근대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은 건축을 머리, 몸통, 다리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으로 바라보며 안정적인 비례와 형태의 규준을 마련했다. 이들은 또한 완전한 형태미를 찾아 동식물의 형상을 분석하고 기하학적으로 추상화하면서 형태의 근본 원리를 모색해나갔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지구 환경의 파괴가 인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자연 법칙에서 디자인의 원리를 탐구하는 연구, 예컨대 생물의 형상과 생체 다이내믹을 그대로 따르는 생체모방(bio-mimicry)과 같은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유기체적 형태를 발견하기 위한 실험은 첨단 컴퓨터 기술과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디자인 프로세스에 접목되면서 한층 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의 건축가 듀오 아란다/래쉬(벤저민 아란다[Benjamin Aranda]와 크리스 래쉬[Chris Lasch])는 육각형이나 크리스털 형태에 기초하여 조형(造形) 원리를 실험하는 디자이너 그룹이다. 이들은 19세기 초기에 사진 기술을 이용하여 5000개가 넘는 각기 다른 모양의 눈송이를 카메라에 담아낸 사진가 윌슨 벤틀리(Wilson Bentley)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눈 입자의 기본을 이루는 육각형을 형태 실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명 ‘6의 원리(Rules of Six)라 불리는 이 실험은 삼면이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입자를 일종의 단위 세포로 삼아 연결하면서 형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팔걸이 의자, 때로는 테이블이 되었다가 좀 더 규모를 확대하면 인간이 머무는 공간, 말 그대로의 집이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도의 수학적 연산이 가능한 컴퓨테이션 과정을 통해 원시의 인간이 살던 동굴이 형성되고 돌출된 바위가 의자와 테이블이 되는 ‘자연’의 공간과 구조(사실 가구란 공간을 이루는 구조의 일부이다)로 회귀하게 된 셈이다.

2008년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는 ‘디자인과 유연한 정신(Design and the Elastic Mind)’이라는 제목으로 유기적인 형태 원리를 탐구하는 디자인들을 선보였다. ‘6의 원리’ 프로젝트로 이 전시에 참가한 아란다/래쉬는 육각형 구조가 자발적으로 조합되고 모듈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물질이 분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생성되고 분화하듯이 이들은 육각형의 면으로 이루어진 대칭 구조의 형상이 자연스럽게 창조되는 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라이브로 재현해냈다. 과거의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소재를 깎거나 쌓아 올려 형태를 만들었던 것과 달리 이들은 자연의 발생적 원리를 따라 형상이 스스로 자라나는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팔걸이 의자(Fauteuil), 알루미늄 프로토타입, 2007
Photo Credit: Johnson Trading Gallery
Commissioned by Johnson Trading Gallery

자연의 생성 원리를 형태 구현에 적용하는 경우에는 특히 첨단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되는데, 사실 이러한 조형 방식은 수 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공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조(織造, weaving)는 짚이나 나무 줄기 등의 자연 소재를 사용하여 한 두 가지의 간단한 조작을 통해 기하학적인 문양과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 생성 방식으로, 세계 각지의 민족들 사이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아란다/래쉬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전통 바구니 직조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그 단순반복적인 프로세스를 다시 컴퓨터로 연산하여 미니멀한 기하학적 조형을 탄생시킨다. 전통과 첨단 테크놀로지의 원리가 교류하는 지점이다.

2010년 아란다/래쉬는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모던 프리미티브(Modern Primitive)’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공개하였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원시의 구현, 원시적 구조가 만들어내는 현대적 미감이라는 측면에서 ‘모던 프리미티브’ 즉 근(현)대적 원시성이라는 타이틀은 이들의 가구(구조물)에 매우 잘 어울린다. 이 때 사용된 형태 단위는 두 개의 정삼각형과 여섯 개의 이등변삼각형으로 구성된 크리스털. 50cm짜리 기본 크리스털로부터 크기가 점점 반씩 줄어드는 2세대(25cm), 3세대(12.5cm), 4세대(6.25cm) 크리스털까지 총 네 가지 종류의 크리스털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면서 여러 타입의 의자로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의자에는 형태의 특성과 분위기에 따라 베이비 체어, 로즈 스툴, 스타 스툴, 다리 달린 미니멀 스툴, 등받이 로즈 스툴 등의 이름이 붙여졌고, 이것은 같은 해 연말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명품패션브랜드 펜디와의 협력을 통해 세트 아이템으로 완성되었다.


‘모던 프리미티브’, 베니스비엔날레 2010
Photo Credit: Aranda/Lasch

육각형, 크리스털과 같은 원초적인 단위 형태는 그 조합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형질의 단위와 쉽게 결합되어 전혀 새로운 것이 생성되기도 한다. 얼마 전 아란다/래쉬의 크리스털 블록은 디지털 그래픽 디자이너 케이시 리스(Casey Reas)의 작업과 만나 미국의 사이키델릭 팝-록 밴드 예이세이어(Yeasayer)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될 때 음파에 따라 매 순간 다른 그래픽 데이터와 진동이 크리스털 구조로 피드되면서 사운드와 비주얼 환경이 하나로 어우러진 완전한 시청각 라이브 공간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21세기 테크놀로지를 통해 재발견된 미니멀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자연의 유기체성을 향해 간다.

김정혜 Jeong Hye Kim

Originally published in Hyundai Magazine A, Wint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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