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bearable Lightness of the Minimal

“나는 과학에 기대를 걸고 모든 무게가 사라지는 꿈을 키워간다”
–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새천년을 위한 여섯 가지 메모(Six Memos for the Next Millennium)』(1993)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 증축관, 2005-12. (c) Nic Lehoux, 2011

‘미니멀(minimal)’이라 하면 장식을 최소화하고 색채를 절제하면서 형식의 단순성을 추구하는 미니멀 양식, ‘젠(zen)’ 스타일로 대변되는 외형적인 단순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미니멀이라는 형용사는 흔히 간결한 형상의 외관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데 사실 20세기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미니멀 형식의 기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20세기 전반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을 주축으로 미술가들이 보여주었던 미니멀 형식은 사물의 구조와 제작 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려는 의도에서 기인하였고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은 사물과 형상의 본질에 닿으려는 개념적인 실험의 결과였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 구축의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 그대로의 투명함을 추구하면서 거친 투박함으로 외화되었던 데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물질성을 배제하면서 비물질적인 투명함을 향해갔다. 특히 최근의 건축/공간 디자인에서는 첨단의 공학 기술이 더해져 재료와 테크닉이 대기처럼 가볍게 정제되면서 건축의 물질성에서 공간의 비물질성으로 빠르게 변화해오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 1937- )는 현대 건축에서 가벼움의 미학을 누구보다 돋보이게 실현하고 있는 디자이너이다. 수수한 기능공 같은 차림새와 달리 그는 인공 섬 하나를 통째로 건설하는 규모의 간사이 국제공항 디자인이나 제노바 구항구 재개발 같은 대규모 도시 계획 프로젝트에 관여해왔고 20세기 말부터는 세계적인 대형 미술관의 건축과 증축을 지휘해 온 마스터빌더이다.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1982-87), 댈러스의 (1999-2003), 스위스 바젤의 (1992-97)에서 피아노는 우아한 고전주의 양식을 반영한 미니멀 디자인을 선보였고 (2003-08), (1999-2009), 보스턴의 (2005-12), 뉴욕 (2007- ) 증축관에서는 21세기 문화 공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왔다. 피아노는 이 밖에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사 건물(2000-07)과 (미술관, 라이브러리)(2000-06) 등 뉴욕의 부동산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휴스턴 메닐 컬렉션, 1982-1987, (c) D Jules Gianakos

이렇게 미국과 유럽의 수 많은 문화 공간 디자인을 이끌어 온 피아노가 자신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바로 ‘가벼움(lightness)’이다. 그가 말하는 가벼움이란 단지 사물의 물리적인 양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고향인 제네바 바닷가 저 멀리 미풍에 휘날리는 차양막이나 고전적인 옷주름에서 연상되는 어떤 것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 같은 정서적인 면이 함께 담겨 있다. 의 지붕을 덮고 있는 모듈식 트러스나 잎사귀 형태는 텍사스의 강렬한 햇빛이 회랑으로 직접 쏟아지지 않게 걸러주는 기능도 하지만 무엇보다 열주형으로 늘어선 그 구조는 건물에 리드미컬한 가벼운 조형미를 더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피아노는 폴란드 공학자 지그문트 마코프스키(Zygmunt Makowski, 구조와 표면이 장력으로 지지될 수 있는 혁신을 이루어냄)나 아일랜드 출신의 엔지니어 피터 라이스(Peter Rice)와 협력하면서 첨단 기술을 통한 질료의 정제를 이루어내는데, 이 같이 스마트 공학을 통해 미니멀 디자인의 정점을 이룬 예가 바로 뉴욕 40번가 한 복판에 위치한 52층 높이의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건물이다. 이 타워는 단위 셀(cell) 구조를 정교하게 끼워 맞추어 벽면의 세리믹이 완벽한 하나의 투명막을 형성하게 함으로써 대기와 같은 무중력감을 선사한다. 마찬가지로 무수한 미세 단위 조각의 완벽한 연결체로 이루어진 간사이 공항의 곡면 지붕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83미터 높이의 아치는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듯한 비행의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사, 200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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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피아노의 건축에서는 유기적인 것(자연)과 기계적인 것, 고전적인 미의 혼합이 시도되고 있고 그 안에서 공학적인 기술은 그의 디자인 양식을 이루어내는 활성동인으로 작동한다. 이것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기계적인 요소(디지털 기술)와 전통적인 요소(재료)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계적인 미학이 자연 숭배적인 차원으로 변화, 변질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 우리는 대기처럼 가볍고 거울처럼 투명한 도쿄의 건물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그 건축물을 거대하고 아름다운 우리 시대의 기념물로 숭배한다. 비물질화되고 비실체화된 미니멀 건축. 그 물신숭배적인 우아함이 야기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현실감 상실의 악몽이면서 동시에 테크놀로지 판타지를 실현하는 이 시대의 미학이다.

*이 글의 개념적 줄기는 Hal Foster의 Art-Architecture Complex (Verso 2011) 4장 “Light Modernity”에서 영향 받았다.

김정혜 Jeong Hye Kim
Originally published in Hyundai Magazine A, Fall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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