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ward a Design-City (Post-design-capital)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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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도시를 향하여 (포스트-디자인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자인수도(design-capital)가 아니라 도시의 이상이 재현되고 구현되고 지속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디자인도시(design-city)이다.”

오늘날 디자인에 있어서 ‘도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였고 특히 서울은 2010 세계디자인수도 타이틀을 계기로 하여 도시와 디자인은 더욱 더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세계디자인수도는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가 주관하는 도시 프로모션 프로젝트로, 2007년 이탈리아 토리노 시가 시범도시로 선정된 이후 서울이 첫 번째 수도로 지정되었고 그 뒤를 이어 헬싱키가 두 번째 세계디자인도시로 2013년까지 그 타이틀을 유지하게 된다.

세계디자인도시는 그 목적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듯이 글로벌 경제와 문화 조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도시 마케팅 프로젝트이며 따라서 시의 정책이나 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서울이 디자인수도의 이름을 유지하던 2010년-2011년(실제로는 프로모션이 시작된 2007년부터 각종 사업이 계속되는 현재 포스트-디자인수도 기간까지 아우른다), 오세훈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는 대중과 언론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스펙터클한 디자인 프로젝트에 상당한 예산을 쏟아 부었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동대문디자인파크/프라자(DDP)의 건설 역시 그 중 하나로, 이 건물은 하디드의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디자인 전시를 유치하고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기획되었다.

2011년 하반기(서울의 세계디자인수도 기간이 끝나갈 무렵), 박원순 시장 체제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전면적으로 변화했다.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을 경제적 번영의 수단으로 접근했던 것과 달리 박원순 시장은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에 방점을 둔 것이다. 애초의 최신 디자인산업의 프로모션 장소를 목적으로 기획된 DDP 역시 시민의 참여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으로 중심축이 이동했고 따라서 시(도시, city)와 시민(citizen), 참여적 성격(civic quality) 등이 재조명되면서 광범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참여적 특성이라는 가치 역시 도시 마케팅을 위한 하나의 슬로건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전략으로 접근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시점(DDP의 개관을 1년 여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에서 모든 가치를 객관적으로 펼쳐 놓고 디자인수도 2010 기간을 돌아보면서 그 기간에 제기되었던 이슈들에 근거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검토함으로써 디자인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과연 디자인수도라는 개념이 유효한 것인지 그리고 디자인 도시란 과연 무엇인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 – 삶 – 디자인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2010년 서울이 세계디자인수도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디자인에 있어서 도시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오래된 서구의 대도시들에서 일어나는 재개발 사업이나 아시아 신흥도시들의 개발과 같은 글로벌 도시개발의 흐름과도 궤를 같이 한다. 이제 디자이너들 특히 공공 영역에 관심있는 디자이너들에게 도시 환경은 현대인의 삶의 패턴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점점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는 도시의 다면적인 측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많은 렌즈가 요구된다. 서울은 식민을 통해 강요된 근대화를 경험하였고 개발과 재개발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동시에 진행되는,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복합적인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기체적인 도시의 다이내믹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은 도시 환경에서 삶을 구성하는 특정 조건들을 렌즈로 삼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삶의 여러가지 조건 가운데 사회문화적 삶의 양태와 질을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들로는 글로벌 경제 상황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들 수 있다.

글로벌 경제 – 실천적 주체의 상실

글로벌 경제 시대의 도시풍경은 지역적 위치나 역사적 장소성과 관계없이 거의 획일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동질화와 획일화는 역사적으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쳐 대량생산•소비의 시대를 지나면서 확산되었고 글로벌 시대에 들어서면서 보다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브랜드의 피자와 커피를 마시며 강남스타일에 맞추어 같은 말춤을 춘다. 글로벌 경제 여건에서 보편화, 일반화되어가는 문화 환경은 특수한 형식을 고안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큰 도전 과제 중에 하나이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취향의 획일화 속도는 늦춰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안적인 생산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조금은 확대된 선택의 기회가 제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자들이 마치 전적으로 자신의 취향을선택하고 표현한다는 착각과 왜곡된 판단을 야기하면서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 주체적인 취향의 선택과 표현을 위한 궁극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글로벌 경제와 취향의 획일화는 생산의 측면에서 지역의 중소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 같이 소비자의 주체적 선택과 표현을 교묘하게 (그래서 보다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에서의 디자인은 산업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의 면면과 촘촘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디자인실천이 점점 더 사회적 삶과 문화에 관여하면서 삶의 경험적 장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제 세계에 닿으려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DIY 디자인이나 공동체 돌봄(caring)의 디자인 같은 형태는 지역의 생산•소비 시스템과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하여 실천적 주체, 주체적인 실천을 회복하려는 사례들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 커뮤니케이션의 상실

디지털 통신 기술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인류에게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기대감을 심어줘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물리적 접촉을 감소시키면서 정서적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MIT의 셰리 터클(Sherry Turkle)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연결된, 그러나 홀로(connected, but alone)’ 또는 ‘다 함께 홀로(alone together, 국문 번역서의 제목은 『외로워지는 사람들』)’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인간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될수록 대화 즉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여러 사회집단 가운데 디자이너들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확산에 있어서 전면에 위치해 왔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기술로 야기되는 인간적 접촉 상실의 문제는 디자이너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정서의 상실은 비단 커뮤니케이션 혹은 인터랙션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첨단 디지털 미디어의 메카(디지털미디어시티)나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지(용산국제업무지구)를 꿈꾸며 기획된 개발 지구의 공간 디자인에서 흔히 등장하는 초인간적 규모의 거대한 블록 기획과 경관을 압도하는 슈퍼 마천루는 휴먼스케일(humanscale)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장소성을 앗아가고 있다. 이 같이 현대 도시의 풍경은 한계를 모르는 건축의 공학적 성취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력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에도 디자인수도이라는 타이틀은 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개발•재개발 계획을 한층 가속화하였던 점을 돌아보면 디자인수도(design-capital)는 과연 디자인=자본(design=capital)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디자인수도(design-capital)에서 디자인도시(design-city)로

도시 환경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점점 더 개인의 자유 의지와 주체성,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친밀성, 공동체 유대와 같은 사안들에 관여하면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시민들이 참여적 이상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간단히 말해 도시에서의 디자인은 곧 시민의 참여적 이상 즉 민주주의와 관계되는 디자인이다.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에서 사회적 삶(polis)의 문제를 다루는 디자인은 사실 디자인 본질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어의 디세뇨(disegno)는 첫째, 개념적 윤곽(outline) 둘째, 생각의 흐름을 가리키는 드로잉(drawing, 프랑스어의 dessin) 셋째, 아이디어(idea)와 콘셉트(concept, 프랑스어의 dessein) 혹은 개념화(ideation, conceptualization)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디자인 실천’으로 이해하는 디자인은 이러한 개념화로서의 디자인/디세뇨라기보다 무언가를 고안하여 세계의 일부로 구성해내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 가깝다. 이는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테크네의 수행적인 측면이 디자인/디세뇨의 개념적인 면에 비해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면서 디자인 프로세스 전반이 실천의 과정으로 인식되어 온 결과이다.

한편, 개념화로서의 디자인/디세뇨와 실천적 고안으로서의 테크네에 대한 인식에 따라 도시 개념도 함께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20세기 전반 근대 디자이너들은 도시를 총체적 기계(city as machine, 외부세계로부터 내부세계를 보호하는 군사적 방어 기기)로 바라보고 개인을 그 운용 기제로 인식하면서 하나의 완전한 기계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러나 실제 도시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개인과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삶의 유기적 합성을 통해 도시 스스로 이상적인 잠재태를 안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존속해간다. 근대의 이상주의자들이 고안한 도시가 기계 혹은 그 매커니즘의 테크네 중심 세계라면 사회적 삶이 발생하는 유기체적 도시는 도시 이상(city ideal)이 스스로 구현되는 디자인-도시(design-city)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도시(design-city)란 간단히 ‘디자인을 목적으로 하는 도시, 디자인에 의해 작동하는 도시(design-driven-city)’, 다시 말해 도시의 이상이 재현되고 구현되며 지속되는 사회적 공간이다. 이 점에서 디자인도시에는 지속가능성 개념이 포함된다. 디자인도시는 자본을 위한 도구로서의 디자인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적 이상을 위한 총체적인 전략으로서의 디자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디자인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도시의 이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계획을 고안하면서 기술과 도시의 이상이 만나는 지점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디자인의 개념화와 테크네의 실천을 잇기 위한 다학제적인 접근이 불가피해진다.

*

서울은 세계디자인수도라는 타이틀을 이미 지난 해에 다음 도시로 넘겨주었지만 디자인수도를 기점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도시의 디자인과 시민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동대문디자인파크/프라자의 디자인 프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내는 2014년 3월 이후에는 랜드마크로서의 건물의 가치는 더 이상 핵심 사안이 아니다. (사실 2014년의 자하 하디드 건축물은 1997년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 한 빌바오 구겐하임과 같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문제는 대중과 호흡하면서 디자인수도의 이상이 아닌, 디자인도시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정혜
2011 도무스아카데미 결과보고서 (수정본)

*에리카 나진스키(Erika Naginski), ‘디세뇨, 테크네, 유토피아(Disegno, Techne, Utopia)’, SMArchS 2011년 9월 23일 MIT 강연. 하버드디자인대학원 교수 에리카 나진스키는 근대 이전의 유토피아 개념이 ‘필요에 기반한 이상사회(needs-based society)’였던데 비해 산업화 이후의 근대 유토피아 개념은 ‘욕망에 기반한 이상사회(want/desire-based society)’로 변화했다고 보고 최근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다시 필요에 기반한 이상사회로 유토피아 개념이 변형, 복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동대문디자인파크/프라자의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는 본 글의 핵심이 아니므로 더 이상 전개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동대문디자인파크/프라자의 태생에 대한 비판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어떠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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