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ng Designers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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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디자인의 상품가치와 그 가치에 대한 도전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순적인 위험한 줄타기의 성공 여부는 디자이너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뉴욕의 건축/디자인 듀오 아란다\래쉬는 지극히 학구적인 실험과 감각적인 상품화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때로는 학술 연구 센터와, 때로는 명품 패션 브랜드 펜디(FENDI)와, 또 가끔은 매튜 리치(Matthew Ritchie) 같은 미술가와 연합하면서, 이들은 영리한 인텔리 디자이너가 과연 어디까지 변신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이 발랄한 줄타기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 그 힘은 형태 생성과 관련한 연구와 실험에 있다. 아란다\래쉬의 형태실험이란 간단히 설명하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복잡한 형태 생성의 원리를 찾아 코드화 하는 것인데, 이들은 하나의 형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일어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툴링tooling’이라는 말로 개념화하고 있다. 툴링은 이렇게 구체적인 형상화 과정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것이 내포한 ‘비결정적 법칙’이라는 개념은 이들의 디자인 행위 자체를 하나의 실험적 프로세스로 이끄는 철학적인 토대이기도 하다.

또한 툴링은 아란다\래쉬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종의 통행증 같은 개념으로, 때로는 예술가치를 얻어내고 때로는 (그 결과) 높은 브랜드가치를 획득하면서 여러 시장 사이를 오가는 이들의 줄타기를 지탱해주고 있다. 예술시장과 상품시장에서 모두 지지를 얻어내고 있는 아란다\래쉬의 디자인에서 이 툴링 개념이 과연 어떻게 구현되고, 디자인 작업의 의미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디자이너의 자의식과 사회적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줄타기가 과연 아름답게 지속될 수 있을지,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예술과 디자인의 만남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더 개념화 되는 시각예술과 고도 자본주의와 밀착된 디자인이 만난다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란다\래쉬는 아티스트, 디자이너, 건축가라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디자이너 혹은 건축/디자이너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툴링 … 변신의 무기

아란다\래쉬는 툴링을 ‘물질이 생성되기까지 일어나는 일련의 잉태 과정, 즉 ‘전-물질(pre-material)’ 단계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일으키는 원리와 법칙—알고리듬—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라 정의한다. 다시 말해, 무언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묘하고 복잡한 원리와 영향 관계 속에서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아란다\래쉬는 이 툴링 개념에 기초하여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탐구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디자인 행위까지 툴링으로 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넓게 확장시켜 나간다.

 
아란다\래쉬, <툴링 Tooling>, 2006
알고리듬과알고리듬으로빚어지는형상들이외부의끊임없는간섭속에서상호관계하는역동적인field분석하고설명하면서수학이나기하학과관련된물질pre-material 상태의 [형상] 법칙을찾아내는, 그것이건축/디자인의본질이라는것을확인하는과정이바로툴링tooling이다. 그리고물질과형상의생성프로세스가아직비결정적인상태로열려있을, 바로지점에서디자인이시작된다.” (아란다\래쉬, <툴링> 서문중에서)
툴링, 즉 도구하기가 디자인에 과연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도구와 도구하기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구에서 도구하기로, 툴에서 툴링으로의 변화에는 망치에서 컴퓨터로 도구의 종류를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 즉, 주체와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함축되어 있다. 도구는 주체(사용자)와 대상(물질)을 연결하는 가치중립적인 매개체인데 비해 도구하기는 주체가 대상을 제안함과 동시에 대상의 생성 프로세스에 참여함으로써 주체-[도구]-대상/결과물 사이의 구분을 교란시킨다. 이런 뜻에서 보면 도구에서 도구하기로의 변화는, 디자인이 도구의 발명이라는 천재적 과업에서 벗어나 이유와 원리를 탐구하는 발견의 과정으로 변화하는 것을 시사한다.  툴링 개념과 디자인 행위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란다\래쉬는 ‘위성satellite’이라는 은유를 끌어들이고 있다. 위성이란 본래 길가에 버려진 돌처럼 이리저리 구르면서 정보의 흡수와 발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움직이는 쌍방향 미디어를 뜻하는데, 디자인 행위는 일종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스스로 띄운 위성에 탑승하여 정보의 송수신을 수행하는 행위의 주체로 변신해 간다. 주체적으로 실험을 개시하고 능동적으로 프로세스에 참여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아란다\래쉬가 툴링 즉 도구하기를 통해 드러내 보이려는 디자인 행위이자 실천이다.

실험 … 위성을 쏘아 올리는 과정 

원래 타이틀이 건축/디자이너인 만큼 아란다\래쉬의 실험은 공간, 특히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대학원 졸업 직후 2004-05년에 시행된 두 개의 프로젝트, ‘브루클린 비둘기 프로젝트’와 ’10-마일 스파이럴’은 툴링 개념과 도시 공간 경험을 은유적으로 연결시키면서 그 의미가 디자인에 어떻게 적용되고 어떠한 사고의 전환을 야기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실험이다.  

초기작 ‘브루클린 비둘기 프로젝트(The Brooklyn Pigeon Project)’는 ‘디자인은 곧 위성을 띄우는 행위’라는 의미를 곧이 곧대로 투영한 작업이다. 이 실험은 원래 도시에 서식하는 새들의 움직임에 어떤 원리가 있을 것이라 보고, 그것을 찾아내어 공간 체험에 관한 공식 같은 것을 도출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선 첫 단계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에 카메라를 장착하여 새들의 비행 경로를 따라가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두 번째 분석과정에서 의도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비둘기의 비행 정보가 결국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법칙으로는 정리될 수 없었던 것! 인간의 인지 범위 내에서는 자연의 움직임을 간단히 수식화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인데, 이것은 역으로 비결정적 알고리듬의 가능성, 다시 말해 없는 듯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마치 초월적인 우주의 원리 같은 법칙의 존재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도 위에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할 수 없는 비-그리드(non-grid)적인 속성, 오직 다양한 영향 관계 속에 놓인 진행중인 이벤트의 연속으로만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이 툴링 즉 도구하기의 본질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디자인의 역사가 그리드 위에 완벽한 지도그리기를 향해 달려왔다면, 툴링은 고정되지 않은, 고정될 수 없는 비-그리드적인 지도그리기를 제안한다.
 
아란다\래쉬, ‘브루클린 비둘기 프로젝트’,
뉴욕 브루클린, 2004
2004년, 라스 베이거스 도시 계획안 ‘10마일 스파이럴(10 Mile Spiral)’에서 아란다\래쉬는 수직으로 솟아 오른 나선형 구조의 하이웨이 도시를 제안한다. 운전자가 차를 타고 나선형의 구조를 오르면서 카지노와 쇼핑, 각종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이 드라이브-인 도시는, 사막에 펼쳐진 라스 베이거스를 90도로 일으켜 세워 압축한 개념적 공간이다. 딱히 건축물이라기도, 그렇다고 도시 계획이라기도 애매한 ‘10-마일 스파이럴’은 불규칙한 리듬과 비율로 표현된 비결정주의적 알고리듬 그 자체이자 알고리듬에 입각해 만들어지는 시각-공간 환경에 대한 일종의 개념적 구축이다.
 
아란다\래쉬, ’10마일 스파이럴’, 2005
라스베이거스 도시계획 콘셉트 디자인 공모 당선작
Photo Credit: Aranda\Lasch
변신 … 실험에서 기호로 

이처럼 도시 공간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실험들은 툴링 즉 도구하기의 속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지만, 사실 아란다\래쉬가 미술관과 패션 브랜드 사이를 넘나들면서 흥미로운 이슈를 만들어가는 종목은 (의외로) 극단적으로 파고드는 형태탐구이다 (여기서 잠시, 미디어를 활용한 실험적인 공간 프로젝트의 경우 ‘아란다\래쉬’는 특별히 ‘테라스웜(Terrawarm)’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데, 사실 모든 작업들이 디지털 미디어에 기반하고, 또 형태의 생성이나 가구 디자인까지도 본질적으로는 모두 공간 개념으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에 ‘아란다\래쉬’와 ‘테라스웜’ 사이에 구분이 모호하다).  

2008년, 미술가 매튜 리치와 공동으로 진행한 설치 ‘이브닝 라인(The Evening Line)’과 ‘모닝 라인(The Morning Line)’은 단위 형상들의 변이와 조합으로 만들어 낸 구조물인데, 작품의 시각적인 유려함과 완성도 높은 공간 구성, 음악과 어우러지는 연출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특별히 미술계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원초적인 단위 형상들이 알고리듬적 법칙에 따라 결합되어 탄생한 구조체. 이것은 때로 이브닝/모닝 라인 같이 집체만한 구조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테이블이나 의자 같은 축소된 구조물로 외화되기도 한다. 한정판으로 제작되는 이 실험작들은 빠르게 아트 갤러리로 흘러 들어가 소장가치와 예술적 교환가치를 획득해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명품 브랜드 펜디와 만나면서 실험실 실험에서 하이패션 브랜드로의 숨가쁜 마켓 이동이 일어난다.
 
매튜 리치 & 아란다\래쉬(아럽 AGU 협력),
‘모닝 라인(The Morning Line)’
TBA, 2008 세빌현대미술비엔날레
소형, 중형단위형상과구조를이루는대형조각들이연결되어만들어지는열린조각적구축물은비공간적인공간개념을만들어내고있다. 구조물안팎에서연주되는사운드(일반적인멜로디나리듬으로구성된음악이아닌자연적파장을따라흐르는음적표현)더해지면서하나의총체적인공간감이생성된다.
 
펜디(Fendi) & 아란다\래쉬, ‘현대적 원시(Modern Primitives)’
2010 디자인마이애미
Photo Credit: Daniele Venturelli

동영상
아란다\래쉬, ‘유사 테이블(Quasi Table)’, 2008
Photo Credit: Johnson Trading Gallery
Commissioned by Johnson Trading Gallery
아란다\래쉬는 알고리듬에 기반한 형태 연구와 타 예술 장르와의 협력 프로젝트를 적어도 일 년에 한 건씩은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이윤을 떠나 실험적인 정신과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일텐데, 현실적으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실험이 예술이 되는 순간에 더욱 강한 브랜드가치가 발생하면서 더 큰 이윤과 유명세까지 얻어 가고 있다. 수많은 셀러브리티 디자이너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얻은 부와 명성을 딛고 또 다른 실험을 이어가고 거기에서 또 다른 부가가치를 얻고. 그렇게 이어지는 순환 고리에서는 어디까지가 실험이고 어디서부터가 기호화 된 브랜드가치의 거래인지 구분이 점점 모호해질 뿐이다.요즘 같이 아란다\래쉬 브랜드 가치의 오름세가 지속된다면 크리스털 형태를 이어 붙인 가구나 크리스털 패턴의 펜디 가방만으로도 한 동안은 부와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발명품이 트렌디 한 브랜드 이미지로 고착되면 순식간에 상품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상품 가치를 계속 떠받치기 위해, 보다 궁극적으로는 상품화에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인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빠르게 독립적인 [형태]연구와 [공간]실험으로 돌아와야 한다 – 이 연구와 실험은 자본의 동기만으로 행해지는 R&D가 아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실천이라는 점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란다\래쉬나 테라스웜의 모든 상품 가치, 교환 가치가 다하고 인텔리 디자이너라는 이미지 값이 다해도, 툴링은 디자인 행위를 재정의 하는 개념의 하나로 남을 수 있고 아란다\래쉬 역시 도구하는 주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정혜 Jeong Hy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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