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echnology an Emancipatory Potential?

스탠 밴더비크, ‘브레스데스 (Breathdeath)’, 1963 -필름 스틸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 센터휴스턴 현대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미디어 아티스트 스탠 밴더비크(Stan VanDerBeek)의 개인전, ‘스탠 밴더비크: 컬처 인터콤(Stan VanDerBeek: Culture Intercom)’
 
실험적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과 존 케이지가 이끈 플럭서스, 개념미술 그룹, 페미니즘 미술가들에 비해 밴더비크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밴더비크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었고, 지난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그의 작품이 대형 멀티 스크린 영상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 릴레이 전시가 4월 휴스턴으로 넘어가기 전,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 센터에서는 약 두 달에 걸쳐 아트 센터 역사상 유례 없이 많은 수의 작품들 – 초기 드로잉에서 멀티 영상물까지 작가의 작업세계를 총 망라하는 작품들 – 이 소개되었고,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단편 영화 상영, 강연 및 심포지엄 등 관련 행사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밴더비크의 작품에서는 사실 여타 60-70년대 실험 미술가들의 작품과 차별화될 만한 특별한 시각 효과나 스타일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더비크의 작품이 2011년 이 시점에 재조명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 가능성 탐구, 그리고 이를 통해 밴더비크가 제시하려 했던 새로운 경험 세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역추적하여 답을 찾아보려 한다.
 
밴더비크의 미디어 작업은 50-60년대 노스 캐롤라이나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시작되었다. 당대 블랙 마운틴 칼리지는 존 케이지나 네오 다다의 대표 작가 로버트 라우셴버그 등이 거쳐가며, 비판적 실험 예술의 메카로 불리던 곳이다. 이 곳에서 밴더비크는 테크놀로지와 예술을 결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아트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초창기 드로잉이나 콜라주 작품들은, 초현실적인 몽타주 기법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각언어로 되살린 네오 다다 계열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그래픽 영상의 탄생 배경에는, 50-60년대 뉴욕의 비트 제너레이션이 보여준 문화적 저항 정신과 실험적 예술 형태(시, 재즈, 영화 등) 그리고 컴퓨터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렇게 밴더비크는 전위적 시각 언어 위에 6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며, ‘예술과 기술이 인간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탐구해나가기 시작했다.
스탠 밴더비크, ‘무비드롬(Movie-Drome)’, 1963-65

– 뉴욕 스토니 포인트(Stony Point)에 세운 영상 프로젝트 전문 공간.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무비드롬’의 내부, c. 1965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무비드롬’ 앞에 선 스탠 밴더비크, 1965 *사진: 레니 립튼

– 무비 드롬은 다수의 슬라이드와 비디오 프로젝션을 이용하여, 비주얼 환경을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설치 프로젝트 공간이다. 공간 전체를 이미지로 구축한 ‘이미지 환경’을 재현함으로써, 시각 이미지로 구성된 또 시각 이미지에 지배되는 현대인들의 삶의 환경을 시사한다.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밴더비크가 60년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작품은, 각종 대중매체 이미지들을 조합한 콜라주에 시퀀스를 더해 영상화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대표작 ‘아추 미스터 케루셰프(Achoo Mr. Kerrooschev)’(1960)와 ‘브레스데스’(1963)는 전위적인 영상 기법으로 냉전 체제와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스탠 밴더비크, ‘아추 미스터 케루셰프’, 1960
 
개념미술가들이 영상 매체를 새로운 예술적 표현 도구로 삼는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스타일로 구축시키는데 주력했던 데 비해, 밴더비크는 작품에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간혹 산만하리만치 다양한 실험들을 계속 밀고 나간다.  그래서인지 막상 작품들에서 한 마디로 표현할 만한 스타일이나 시기적 특성들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작가적 경향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다면, 작품에서 1910년대 다다의 흔적과 50년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미디어 작업이 엿보이며, 심지어 80년대 도발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어필했던 페미니즘 작가들의 텍스트+이미지 기법도 눈에 띈다. 후대의 비판적 이미지 영상들이 밴더비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 수 있겠지만, 상당수의 후대 작업들이 그의 영향권을 한 번쯤 관통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이미지 표현 기법들이 그의 손에서 실험된 것은 사실이다.
 
스탠 밴더비크,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1959 
 
60년대 말을 지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밴더비크의 실험은 컴퓨터 그래픽과 적극적으로 결합되면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통신 기술과 컴퓨터 이미지 프로세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밴더비크는 이 무렵 MIT 첨단 비주얼 연구 센터(Center for Advanced Visual Studies)와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컴퓨터 이미지 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한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자신의 초기 드로잉을 모션 그래픽으로 발전시키고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한 초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다.
MIT 첨단 비주얼 연구 센터에서 작업 중인 스탠 밴더비크, c.1969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스탠 밴더비크, MIT 첨단 비주얼 연구 센터 1
 
스탠 밴더비크, MIT 첨단 비주얼 연구 센터 2
 
신기술을 처음 실험하는 이 단계에서 밴더비크는 인간의 두뇌와 신체 감각이 툴과 반응하는 방식을 면밀하게 탐구해간다. 마치 어린 아이가 말을 배워가듯이 말이다. 지금은 일반화되어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는 감각적 반응과 그 효과들에 대해, 그는 마치 신대륙의 발견자처럼 뉴 테크놀로지에의 적응 과정을 분석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일종의 ‘음악적 공감’을 창조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컴퓨터의 수학적 계산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반복적인 움직임과 그것이 빚어내는 음악적인 리듬은 밴더비크의 영상 작업에서 중요한 표현 장치로 등장한다. 때로는 바하의 푸가처럼 완벽하게 규범화된 비트를 이미지 모션에 맞추어 통제적인 리듬감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영상과 어긋나는 오프 비트를 더해 불편한 시각-청각적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상과 음악의 콤비네이션 위에 무용을 더하면서 리듬감은 한 차원 더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햄이 안무를 맡은 1965년 영상 ‘변주 V(Variation V)’에서 댄서들은 밴더비크의 모션 그래픽 영상과 전위적인 사운드에 맞춰 몸동작을 표현해나간다. 모션 그래픽의 리듬과 음악적 리듬에 맞추어 댄서들이 다시 모션으로 표현하는 리듬, 그것이 다시 스크린 속의 모션 그래픽과 오버랩되면서 또 다른 리듬을 만들고… 이렇게 시각적 리듬과 청각적 리듬이 얽히는 과정을 바라보는 관객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청각 인지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사운드는 뇌로 전달되어 소리로 인지되는 동시에 파장이 피부에 닿으면서 몸 전체로 진동을 느끼기 때문에 그 전달이 대단히 직접적이다. 밴더비크가 말하는 음악적 공감이란 바로 이러한 감각적 체험, 현상학적인 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모션 그래픽의 철저히 비유기적(inorganic)인 상태를 유기적(organic)으로 경험하게끔 재창조하는 과정. 기계에서 인간으로, 혹은 물질에서 생명으로의 극적인 전환. 이것이 바로 밴더비크가 상상했던 새로운 테크놀로지 시대의 예술적 경험이다. 이 실험의 저변에는 20세기 초 기계시대가 초래한 인간의 기계화를 결국 고도의 기술적 발전을 통해 다시 인간적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첨단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기계의 인간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스탠 밴더비크, ‘변주 V (Variation V)’, 1965한편, 밴더비크가 진정 기계의 인간화를 꿈꾸었던가 역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보다 더 근본적으로 기계와 인간의 상생적 통합이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은 진지하게 재고해봐야 할 부분이다.최근 몇 년 사이 통신 기기와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 인간의 감각적 경험에 관한 연구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햅틱(haptic), 즉 촉각적 경험에 대한 연구로 터치스크린 제품이 상용화되었고 사용자들은 매우 빠르게 터치 조작에 익숙해졌다. 조이스틱을 이용한 기계적 조작이 강조되던 과거의 게임 기기는, 이제 게이머가 자신의 팔 다리를 움직여 직접 몸으로 겨루기를 체험하는 게임적 상황으로 변화되었다. 기계적 장치의 존재를 과시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장치가 소멸함(감춰짐)으로써 점차 테크놀로지라는 추상적인 상황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단계로 나가고 있다.

밴더비크가 예상했던 대로 테크놀로지는 대상과의 직접적/신체적 체험(음악적 공감)의 가능성을 분명 높여주었고 그 경험의 폭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가져오는 감각적 체험이 곧 인간의 자유나 사회적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품이나 브랜드 가치를 구매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스탠 밴더비크, ‘포엠필드 No.3 (Poemfield No. 3)’, 1967
– 16mm 필름 DVD 전환, 컬러, 무성, 10분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2월 초 MIT의 전시 오픈과 동시에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유기적인 것과 비유기적인 것, 인간과 기계 사이의 순환적 관계와 그 과정에서 인간 주체(subjectivity)와 인간 해방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시스템’이라는 키워드로 논의하는 이 토론은 결국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그 성과에 대한 장밋빛 희망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인간 주체의 문제로 토론의 방향을 전환하려는 몇몇 패널들의 노력 역시 테크노크라트 주도적인 분위기에 묻히고 말았고, 대부분 엔지니어들로 채워진 관객들 역시 거시적인 비판적 논의보다는 구체적인 기술적 문제에 더 집중했다. 기술의, 기술에 의한, 기술을 위한 논의. 기술만이 기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다른 의문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였다.

‘시스템, 프로세스, 아트, 그리고 사회적인 것(System, Process, Art and the Social)’이라는 주제로 인문학과 공학을 가로지르겠다는 심포지엄의 야심 찬 기획 의도는 공학도가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MIT에서는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90년대 이후 분야를 막론하고 간학제적 연구가 일반화 된 듯 하지만 실제 전문 분야들 사이의 벽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간학제적 연구로 인해 타 분야에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잠식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 제도적으로는 통합되어 있으나 이면에서는 배타적 성향이 짙어지기도 한다. 결국 이 심포지엄은 21세기 현재적 시점에서 밴더비크의 실험적 의미를 조명하려던 전시 의도와는 많이 다른 결론으로 귀결되고 말았는데, 어쩌면 그 자체가 테크놀로지에 거는 엔지니어들의 희망과 시장 현실 사이의 모순 혹은 간극을 말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스탠 밴더비크, ‘무제(Untitled)’, C-프린트, 1967/2009
courtesy of the Estate of Stan VanDerBeek


밴더비크가 70년대에 가졌던 기대 – 새로운 예술 형태와 새로운 경험 세계에 대한 기대 – 의 저변에는 테크놀로지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중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소통의 민주화가 궁극적인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이러한 기대와 희망은 지금도 여전히 기술 연구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기술, 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감각적 인지 경험의 폭을 급격하게 확장시켰고, 그로 인해 인간은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의 몸의 경험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감각적 경험을 자극했던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면서, 인간은 더 강력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 환경을 요구하고, 따라서 절대적인 자율적 인지력(외부 자극과 무관한 독립적 존재)은 점점 더 약해지는 듯 하다. 최첨단 기술이 인간에게 더 큰 자유와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시장에서 허용하는 만큼의 기술력에 적응하고 길들여져 가고 있다. 이 안에서 주체적인 경험 가능성을 지켜내는 길은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비판적 사고뿐이다.
김정혜 Jeong Hye Kim
Originally published on designflux.co.kr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