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Monster Aesthetics – Perspecta 40

Perspecta 40해마다 철마다 숨가쁘게 변하는 유행을 따라잡기란 디자이너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벅차게 힘든 일이다. 유행이 어느 지점에서 순환한다고들 하지만 과거 스타일과 완전히 같은 스타일이 반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어깨를 강조한 파워숄더가 유행한다고 해서 삼십 년 전 옷을 꺼내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워숄더 재킷은  80년대 디자인을 따르면서도 어깨선을 한껏 날렵하게 마무리하고 초극단적으로 높게 끌어올려 SF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형태의 근원은 흡사해보이지만 낭만적 반항과 기개를 뽐내던 80년대의 어깨선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파워 숄더와 같이 극도로 과장된 디자인 형태는 패션 뿐만 아니라 제품,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공간디자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유기적 변이 형상 캐릭터들이 만들어져왔고, 디지털 설계가 가능해진 이후, 산업시대를 상징하던 기하학적 형태 대신 유기적인 건축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이 대표적인 예를 보여준다.

‘클레멘소 아키텍츠(Clemenceau Architects)’의 건축 디자이너 마크 포스터 게이지(Mark Foster Gage)는 예일 대학교의 건축 저널  ‘퍼스펙타(Perspecta)’ – ‘몬스터(Monster)’ 특집호(40호)에서 이러한 변이 형상을 형태의 발생과 진화 과정으로 분석하고 있다. 게이지는, 세포처럼 단순한 하나의 형상에서 끝없이 변이 형상이 재창조되고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채택되어 또 다시 진화를 거듭한다는 다윈의 진화론 (혹은 진화 미학)을 글의 첫 머리에 소개하고, 최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변이 형상을 실험하는 디자인 작업들을 소개한다. 트로닉 스튜디오(Tronic Studio)의 유연한 모션그래픽 시퀀스, 알베르토 세베소(Alberto Seveso)의 캘리프래픽 디지털 포트레이트, 마리안 반티에스(Marian Bantjes)의 벡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게이지 자신이 운영하는 클레멘소 아키텍츠의 디지털 건축 디자인을 몬스터 형상미의 사례로 들고 있다.

게이지는 형상의 변이 진화 과정을 ‘밈(meme)’ 개념에 빗대어 설명한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Oxford)가 개진한 ‘밈’ 개념은 유전자 복제 현상을 사회 문화 현상으로 확대시킨 이론으로, 인간의 생각과 감성에까지 ‘밈’ 이론이 적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밈’은 ‘문화적 전이 단위나 복제 단위’를 뜻하는 용어로, 복제와 재해석을 통해 전달, 파급되는 패션 트렌드나 각종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복제 과정 속에서 완벽한 복제를 거부하는 반작용이 일어나 그 둘 사이의 저항이 새로운 형상/현상을 발생시킨다는 논리다. 이를테면, 대리석 속에 내재해 있는 형상을 발견하고 이끌어낸 미켈란젤로의 작업이 ‘창조적 천재성’에 의한 것이라면, 밈 개념에 기반한 형상의 진화, 발생은 반복적인 습작 과정을 통해 변이 형태를 만들어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업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게이지는 하버드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미학자인 일레인 스케리 (Elain Scarry)의 글을 인용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반복적 복제를 통한 창조 과정이 ‘밈(meme)’ 개념과 맞아 떨어진다고 역설한다.

“소년(레오나르도 다 빈치)은 그림(베로키오의 드로잉)의 얼굴을 베끼고 또 베낀다 […] 살아있는 식물로, 새로운 얼굴로 재탄생 할 때까지 같은 과정을 한없이 반복한다. 마치 패이터(레오나르도의 이 모든 작업을 글로 쓴 이)가 레오나르도의 행위를 글을 통해 반복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그 결과 하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로, 메두사로, 여인과 아이로, 성모마리아로, 세례요한으로 되살아난다. 이렇게 수 천번의 반복 과정을 거쳐 탄생한 레오나르도의 그림 속 얼굴들, 그리고 페이터의 글로 재현된 얼굴들은 지금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게이지, Perspecta 40: 94; 스케리, On Beauty and Being Just: 3-4)

이것은 한 마디로 몬스터의 탄생이다. 그러나 이 변이는 완전 복제에 이르지 못한 실패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발생의 과정이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력에 의해 변이 속도는 수 천, 수 만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단축됨으로써 말 그대로 몬스터 형상의 무한증식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채택된 형상의 확산 또한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이루어져, 한 분야에서 탄생한 ‘몬스터 밈’은 다종 다양한 문화 영역과 장르를 넘나들며 흡수되어 간다.


하이메 아욘(Jaime Hayon), ‘제트 세트(Jet Set)’,
인스톨레이션, 비사차(Bisazza)

게이지는 이같이 변이 과정을 통한 조형(造形) 작업을 일회적인 천재적 행위로 보지 않고 대신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사이를 오가며 이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수분(受粉) 작용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 변이하는 형태미가 현재와 미래의 미감이라고 확신한다. 앞서 언급한 파워 숄더 재킷에서부터 초극단의 유기적 형태미를 추구하는 하이퍼 오가닉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변이에 변이를 거쳐 탄생한 과장되고 [절대적 비례에 의거한 고전적 미적 기준에 비해] 불균형적인 디자인들이 각광받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몬스터 형상의 미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게이지는 몬스터의 거부할 수 없는 미적 가치를 ‘현기증이 날만큼 현란한 움직임과 끊임없는 꿈틀거림, 갓 태어난 생명체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생명력과 에너지’라고  설명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파워 숄더 디자인은 삼십년 전 디자인의 단순한 반복과 응용으로 탄생이라기보다, 이음매 없는 미래적 단순미를 지나 유기적 곡선을 극도로 과장하여 고도의 강렬함과 생동감을 추구하는 21세기 디자인의 경향을 받아들인 스타일로 해석된다. 스페인 가구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의 등받이를 과도한 높이로 올려 세운 의자와 동일한 스타일을 적용한 테이블 및 조명, 그리고 이들 가구 디자인을 응용한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도 형상의 비정상적 극대화를 통한 에너지 넘치는 형상미를 감지할 수 있다. 60년대 디자인을 되살린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은 일명 ‘바로크적 복고’로 불리는데, 여기서 바로크적이라는 말 역시 드라마틱한 과장을 뜻하고 있어서 몬스터 미학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을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형상을 빚기 위한 도구나 장치에서 나아가 창조의 과정 그자체, 즉 이 시대의 자연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변이를 거듭하며 탄생하는 엄청난 양의 형상 – 시각 이미지 가운데 최적의 아름다움(절대적 아름다움이 아닌)을 선별할 수 있는 센스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김정혜 Jeong Hye Kim (March 4, 2010)
Originally published on design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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