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ho Feel Differently (5/5)

*The artist Carlos Motta generously gave permission to post the text from his project http://wewhofeeldifferently.info/
en-kr translation by Jeong Hy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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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V: Queering Art Discourses

5부 : 예술 담론의 퀴어화

Silence
침묵

 

Jonathan D. Katz
Art Historian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What one has to begin by doingis getting rid of the idea that gay is a biographical category. I certainly do talk about gay artists, but I also talk about artists like Thomas Eakins. One has to recognize, the genius of being an art-historian, as opposed to a literary scholar, is that pictures can say things written materials cannot. Words carry political significance and legal weight but pictures can evade things. You can notice things in a picture or not. You can make something available to one audience, while excluding another. Pictures have the ability to articulate a scene in a number of different social and political registers and so we have this extraordinary archive of queer American history and queer art history that we never thought to look at precisely because we have never approached it this way.

조너선 D. 카츠
미술사학자
미국 뉴욕 뉴욕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게이가 생물학적인 범주라는 생각을 없애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게이 아티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토마스 이킨스 같은 아티스트도 언급합니다. 문학자가 아닌 미술사학자의 천재성은 글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그림이 이야기한다는 것을 안다는 점입니다. 말은 정치적인 의미와 법률적인 무게를 안고 가지만 그림은 이런 것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는 이런 내용을 알아챌 수도 있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일부 관객에게만 보여지고 다른 이들은 배제시킬 수 있습니다. 그림은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인 의미체계로 풍경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전에는 접근한 적이 없어서 한 번도 정확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미국 퀴어의 역사와 퀴어 미술사의 아카이브가 있습니다.

What there is, is a shortage of queer discursive frames, and until there is a greater acknowledgement of the discursive import of sexuality, it will not matter how many works by queer artists museums buy. It is also the case that because of this reign of silence, we have actually falsified American art history.

퀴어 담론의 틀이 부족합니다. 섹슈얼리티의 담론적 중요성에 대한 보다 큰 인식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퀴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얼마나 많이 구입했는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침묵의 지배로 인해 우리는 미국 미술사를 실제 조작해 온 것이기도 합니다.

In that sense it is an aggressive wiping away, coming from several things but I do not actually think American moral prescriptions are at the top of the list. I think what is at the top of the list is money. We once had an idea of the museum as in the service of the public interest and in some sense trying to elevate the public through exposure to culture. However patronizing that 19th century model, what has happened in museums over the last 25 years is the way in which they have become an extension of private capital.

그런 점에서 볼 때 이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일종의 공격적인 삭제인데, 저는 사실 미국의 윤리적 처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돈이라고 봅니다. 한 때 우리는 미술관 개념을 대중의 관심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 대중을 문화에 노출시켜 교양을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19세기 모델을 후원함으로써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미술관이 어떻게 사적 자본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We see this most readily in the case of the L.A. MOCA when after financial problems; a major donor dictates the terms under which the museum will reinvigorate itself by selecting a new director who is an art dealer. The process becomes full circle because collectors are telling museums to hire dealers making current directors nervous, and that is because we effectively have high volume commodities. Essentially the focus of our forms of inquiry shifts to allow market forces to mitigate against the discussion of sexuality. Ellsworth Kelly told me once that if people found out he is queer, it would hurt the price of his work. Worry about prices and what the imputation of his queerness would do to the price of an artwork, tells you a little something.

이 현상은 재정난 이후의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주 후원자가 미술품 딜러를 새로운 관장으로 선임하면서 미술관 재활성화 문제를 전적으로 지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컬렉터들이 미술관에 딜러를 고용하라고 하여 현 관장들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이 과정은 순환을 이루게 됩니다. 시장의 힘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우리가 탐구하는 문제의 초점이 섹슈얼리티 논의가 막히는 데로 이동하게 됩니다. 엘스워스 켈리는 사람들이 자신이 퀴어인 것을 알면 작품 가격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가격에 대한 염려, 그리고 퀴어라는 오명이 작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뭔가를 말해줍니다.

 

Victor Manuel Rodriguez
Queer Theorist and Art Historian
Bogotá, Colombia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sexuality in Latin America has been a relationship that has been constructed through silence regarding that sexuality; it is not a question of demanding that people should speak about it but of showing other ways in which silence operates, which does not necessarily imply vindicating silence as a strategy of self-representation and cultural fight. Silence functions as a strategy of the historical artistic discourse but also as a strategy of resistance, and such is the case of the gay couple that purchases the painting because it allows them to hang the image of the naked man in their sitting-room while at the same time they can keep the secret of their sexuality, since what they have is a work of art.

빅토르 마누엘 로드리게스
퀴어 테라피스트 겸 미술사학자
콜롬비아 보고타
라틴 어메리카에서 미술과 섹슈얼리티의 관계는 줄곧 섹슈얼리티에 관한 침묵으로 형성된 관계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하라고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침묵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침묵을 자기 재현과 문화적 싸움을 위한 전략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역사적인 예술 담론의 전략으로뿐만 아니라 저항의 전략으로 기능합니다. 이것은 그림을 구매하는 게이 커플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자신들의 비밀스런 섹슈얼리티를 유지하면서 거실에 남성 누드 이미지를 걸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 작품이니까요.

 

SUSU
Activist and Cultural Producer
Seoul, Korea

수수
행동주의자 겸 문화생산자
한국 서울

 

Sarah Schulman
Activist and Novel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Theatre is so conservative in this country it is shocking, and I am an insider. Theatre is obsessed with telling the one story they think is at the center of the culture, which is the coming of age of the white male, it is the only story that is seen as important. Literature is different because it is a mass art form and publishers want to sell as many books as possible to reach a wide audience, so all different kinds of people can publish books.

사라 슐만
행동주의자 겸 소설가
미국 뉴욕 뉴욕
이 나라에서 연극계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저는 그 내부에 있는 사람입니다. 연극은 문화의 중심에 있다고 여겨지는 단 하나의 이야기, 백인 남성 시대의 이야기에만 매달립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문학은 다릅니다. 문학은 대중 예술의 형식이고 출판사는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판매하려 하기 때문에 여러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출판을 할 수 있습니다.

Still, the dominant apparatus containing this genre remains the white straight male as the emblematic voice of the culture. There are a few exceptions, but they are always decontextualized, like Toni Morrison or someone like that. We went from Hemingway and Fitzgerald to Bellow and Roth, and now we are on to Franzen, so it is always the replaceable straight white male author dominating the culture of publishing. Cinema is about niche, so there is the Black Queer Film Festival, the Arab-American Film Festival, and so on.

이 장르를 담아내고 있는 지배적인 기제에서 문화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백인 이성애자 남성입니다. 몇몇 예외가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토니 모리슨과 같이 컨텍스트 바깥에 위치합니다. 헤밍웨이, 피트제럴드에서 벨로우와 로스까지, 그리고 지금은 프란젠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출판 문화를 지배하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 저자들이 서로 교체해 가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틈새에 관한 것이어서 흑인 퀴어 필름 페스티벌, 아랍-어메리칸 필름 페스티벌 등이 있습니다.

People cannot get seen in the mainstream, so they produce work at a very low budget. The work is only shown in queer environments and you can’t get the money to move the work forward, so it remains a satellite around this impenetrable dominant culture that never sees any of this as part of the world, people who spend their whole lives looking in the mirror and thinking it is a window with no idea what is going on outside.

이들은 주류에서 상영될 수 없어서 저예산으로 제작됩니다. 퀴어 환경에서만 상영되기 때문에 작품을 해 나갈 돈을 벌 수가 없고, 그래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지배 문화, 이것을 결코 세상의 일부로 바라보지 않는 그 문화의 주변을 맴도는 위성으로 남게 됩니다. 평생 거울을 보면서 창문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Edmund White
Novel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Universalism was an idea the French invented in the 18th century and it was a very progressive idea at the time because it basically said a black woman from the Antilles and a white man from Paris are the same, they are both individuals and they are citizens. The kind of universalism of that period was very progressive. Now, when people use the word ‘universal’ it is almost always reactionary, because they are really trying to say that if you are not writing about a white heterosexual man, then you are not writing about something universal, your work is too particular, you are only writing about a Chinese Lesbian, for example, and who could possibly care about that? Straight male critics still dominate the literary field, so the reception of literature, whether it is in universities or critical establishments, is still informed by these tastes and prejudices, that are defended by being called ‘universal.

에드문드 화이트
소설가
미국 뉴욕 뉴욕
보편주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나온 개념으로, 당시에는 대단히 진보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서인도 앤틸리스 제도 출신의 흑인 여성과 파리 출신의 백인 남성이 동등한 개인이고 시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보편주의라는 것은 이렇게 대단히 진보적인 것입니다. 지금 ‘보편적’이라는 표현을 쓰면 거의 언제나 반동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말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 관한 것을 쓰지 않으면 그것은 보편적이 아니라 너무나 특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중국인 레즈비언에 관해 쓰면 누가 신경을 쓰겠냐는 것입니다. 이성애자 남성 비평가들이 여전히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고, 따라서 대학이건 비판적 기구이건 간에 문학의 수용은 여전히 ‘보편적’이라는 것으로 방어되는 이러한 취향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Breaking the Silence
침묵 깨기

 

-VOICEOVER-
American artist Emily Roysdon has attempted to break that silence by resisting to the dominant forces of what we may deem impossible. She developed the concept of “Ecstatic Resistance.”

해설-
미국의 아티스트 에밀리 로이스던은 대응하기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지배적인 힘들에 저항함으로써 침묵을 깨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녀는 ‘황홀한 저항’(Ecstatic Resistance)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Emily Roysdon
Art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The idea itself is about mobilizing a vocabulary of the impossible, and the imaginary. Thinking about political representation, I located this idea and made a diagram of it, a schema where the impossible and the imaginary are two intersecting circles with struggle and improvisation as these two pyramids with movement at the core. It is all set within this field I call “the pleasure stain.” So it is about bringing this element of pleasure and performativity into resistance and thinking about plasticity, strategy and communicability, the unspeakable and telling. It is within this vocabulary of words I am playing with that I am thinking about a disruptive and destabilizing set of strategies to get beyond our limited imaginaries.

에밀리 로이스던
아티스트
미국 뉴욕 뉴욕
개념이란 불가능한 것과 상상의 것에 관한 단어를 모으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적 재현에 관해 생각하면서 이 개념을 놓고 다이어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불가능한 것과 상상의 것은 투쟁과 즉흥적인 대응으로 이루어진 상호 교차하는 원들이며, 이 두 개의 움직이는 피라미드가 중심에 자리하는 구도를 펼쳐 보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제가 ‘쾌의 얼룩’이라고 부르는 장 안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쾌와 수행성의 요소를 저항으로 가져오고, 조형성, 전략, 커뮤니케이션 가능성,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기에 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한적인 상상력을 넘어서기 위한 파열적이고 또 불안정성을 일으키는 전략들에 관한 생각은 제가 운용하는 이 단어들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One of the examples I use to try talking about it is to think about the way the horizon of the impossible is always shifting. At one point, it was impossible to think black people would be free in America. At another, it was impossible to see women voting. Thinking about politics as a system of impossibilities, where people control the imaginary of what is possible to be, I started to think through “Ecstatic Resistance” as a force against that. The “ecstatic” is about an encounter to me; is an encounter where you get turned on just enough that your boundaries shift for a minute. I am interested in work that brings you to this place and presents an alternate reality as a possibility, works that somehow physically affect you.

이것을 말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저는 불가능한 것들의 지평이 움직이는 방식에 관해 생각합니다. 한 때는 미국에서 흑인의 자유로운 해방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 때는 여성이 투표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정치를 불가능한 것들의 체계, 즉 가능한 것의 이미지가 어떠할 지를 사람들이 통제하는 체계로 생각하면서 저는 ‘황홀한 저항’을 대항의 힘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황홀한’ 것은 우연한 만남에 관한 것입니다. 이 조우에서는 살짝 흥분이 일어나 잠시 동안 한계들이 움직이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곳으로 불러들이는 작품에 관심이 있고, 대안적인 현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소 신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작품으로 제시합니다.

I think I am positing it as a relation between, an encounter you can have with a person, an artwork, or your own self I guess. It is the encounter that addresses our concept of the other, and my desire is to position that encounter as present and ecstatic because I want it to be developmental and challenging.

저는 이것을 사람, 작품, 자아와의 관계, 이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위치시킵니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피력하는 조우이고, 저는 그러한 조우를 현존하는 황홀한 상태로 위치시키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전개되고 도전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VOICEOVER-
Throughout her career as an artist, writer, editor and curator, Harmony Hammond has actively resisted the forces of invisibility by naming and representing lesbian artists. Speaking about the “Lesbian Art and Artists” issue of the 1970s feminist publication Heresies, which she co-edited, Hammond highlights the importance she saw in the act of naming.

해설-
하모니 해먼드는 아티스트, 필자, 편집자, 큐레이터로 활동해오면서 레즈비언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재현해가며 비가시성의 힘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왔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 출판물인 《허레시스》(Heresies) 특집호 ‘레즈비언 아트와 아티스트들’을 공동 편집하고 직접 그 안에서 발언하면서 이름 부르기 행위를 통해 발견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Harmony Hammond
Artist
Galisteo, New Mexico
United States

To name, to make present. If you do not name, you do not have a cultural history, and if you don’t have a cultural history, you do not exist. Everybody understood that. At that time there was only a little writing on lesbian artists like Romaine Brooks and Rosa Bonheur by a few queer art historians who were primarily writing in feminist or gay publications. As editors, we wanted to bring some historical lesbian artists into the magazine to create a conversation about what it meant to be a lesbian artist in the 19th or 20th century. And what we found is, first of all, there wasn’t much we could draw on historically. It didn’t exist. And second, we had a lot of trouble getting women.

하모니 해먼드
아티스트
미국 뉴멕시코 갈리스테오
이름 부르기는 존재하게 하기입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문화사를 가질 수 없고, 문화사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시 로메인 브룩스와 로사 보뇌르 같은 레즈비언 아티스트에 관한 글은 주로 페미니즘이나 게이 출판물에 기고하는 퀴어 미술사학자들이 쓴 몇 편에 불과했습니다. 편집자로서 우리는 역사적인 레즈비언 아티스트들을 잡지에 불러 모아, 19세기 또는 20세기에 레즈비언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관한 대화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불러들일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Douglas Crimp
Art Critic and AIDS Activ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Making available a kind of queer culture that I think has a lot to teach us about how we could be queer in the present beyond the kind of conservative identity-based, rights-based, normative gay culture of today. For example,  I have a chapter on Chelsea Girls, which is a canonical and probably the most important Warhol film, but there is not great literature on it. My essay is called ‘Misfitting Together.’ The title is taken from a Warhol quotation where he says people presumed that people from The Factory all thought alike but were in fact just a group of Misfits ‘misfitting’ together.

더글러스 크림프
미술비평가 겸 에이즈 행동주의자
미국 뉴욕 뉴욕
제가 생각하는 형태의 퀴어 문화가 가능하게 되면 오늘날 보수적인 정체성과 권리에 기반한 규범화된 게이 문화를 넘어서, 현재 퀴어되기에 관해 많은 것을 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가장 규범적이고 또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워홀의 필름 《첼시 걸스》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훌륭한 글이 없습니다. 제 글의 제목은 ‘함께하는 부적응’(Misfitting Together)입니다. 이 제목은 워홀의 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더 팩토리’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생각한다고 짐작하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서로 ‘맞지 않는’ 부적응자 집단이라고 말했습니다.

I used this idea to think the double screen projection in Chelsea Girls. Actually, Yvonne Rainer wrote a review of the film when it came out and she talked about how watching Chelsea Girls is about watching the line between the two frames. I take this as a kind of deconstruction of the notion of the couple, or the idea that “two become one” because in Warhol two does not become one: It is a resistance to the notion of coupling. That kind of reclamation of accessing that notion of queer which pre-existed what we think of it. I mean we think of that as the time of abject sadness among gay people, as prior to their liberation, but of course it was a much richer scene than that.

이 개념을 도입하여 《첼시 걸스》에서 나오는 더블 스크린 프로젝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필름이 나왔을 때 실제 이본느 레이너는 리뷰에서 《첼시 걸스》를 보는 것과 두 가지 프레임 사이의 구분선을 보는 것이 어떻게 같은가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워홀에게는 두 개가 하나가 되지 않으므로, 저는 이것을 커플 또는 ‘둘이 하나되기’라는 개념의 해체 같은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커플 개념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앞서 존재하는 퀴어 개념에의 접근을 재주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게이들의 해방에 앞선, 그들 사이의 처참한 슬픔의 순간으로 보려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한 풍경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Victor Manuel Rodriguez
Queer Theorist and Art Historian
Bogotá, Colombia

The exhibition “Yo no soy esa”, (“I am not that woman”), which inquired into the different forms of resistance of the queer Bogotá of the 1980s. It attempted to establish a connection between artworks and non-official sexual practices within a framework of resistance both to the normalization of queer lives during that period and to the art institution. Such is the case of Miguel Ángel Rojas. In the 1970s and 1980s, he produced a series of photographs showing the spaces for gay encounters in theaters, public bathrooms and parks.

빅토르 마누엘 로드리게스
퀴어 테라피스트 겸 미술사학자
콜롬비아 보고타
‘나는 그 여자가 아니다’(Yo no sosy esa)라는 전시에서는 1980년대 보고타 시 퀴어들의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저항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퀴어 삶의 규범화/일반화 및 예술 제도에 맞선 저항의 틀 안에서 예술 작품과 비공식적인 성적 행위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려는 시도였습니다. 미겔 앙겔 로야스가 그 예입니다. 1970~80년대에 그는 극장, 공중목욕탕, 공원과 같이 게이들이 만나는 장소를 사진으로 담은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The first time he was asked to exhibit in a gallery, he showed these photographs in a 0.5 millimeters in diameter format. Nobody sees anything, and I wonder: What is this work resisting? What it is resisting is, precisely, that this queer world be transformed into art and strengthen the art institution. It seems to say: this world is not for you. This world is not at the service of artistic voyeurism, so to speak. The work always resists being seen, being understood, and there is a scenario that renders translation impossible. One sees this photograph, and if one does not form part of the universe of this subculture, one can hardly realize that one is in the restroom of the Faenza Theater, looking at someone who is returning the gaze. There are codes that the work resists.

처음 갤러리 전시를 의뢰 받았을 때 그는 0.5밀리미터 반경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작품이 저항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것이 저항하는 것은 퀴어의 세계가 예술로 변형되고 예술 인스티튜션을 강화시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 세계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이 세계는 예술적 관음주의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는 늘 보여지거나 이해되는 것을 거부하고 또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시나리오가 존재합니다. 이 사진을 보고 이 하위문화 세계의 일부를 이루지 못한다면, 파엔자 극장 화장실에서 누군가와 시선을 주고 받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작품이 저항하는 코드들이 있습니다.

 

-VOICEOVER-
Through live performance, Mx. Justin Vivian Bond has found a way to resist heteronormativity and to denounce American conservative politics.

해설-
Mx. 저스틴 비비안 본드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이성애 규범주의에 저항하고 미국의 보수적 정치에 저항하는 방법을 찾았다.

 

Mx. Justin Vivian Bond
Performer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I use Kiki as a mouthpiece for my political agenda. I can rail against Reagan and Bush. I can rail against the war by creating a gay son for myself. I can talk about women’s issues, as a woman who had her children taken from her because she was too wild. I could say everything in this crazy way because people would understand my character as a drunk. One of the classic lines was: ‘The saddest day of my life was the day John Hinckley missed when he tried to assassinate President Reagan,’ and then I would go off in this dirty rant about Reagan. It was funny.

Mx. 저스틴 비비안 본드
퍼포머
미국 뉴욕 뉴욕
전 키키를 저의 정치적 의제를 대변하는 마우스피스로 사용합니다. 키키를 통해 레이건과 부시를 욕할 수도 있고, 제 자신을 대신하는 게이 아들을 만들어 전쟁에 맞설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거칠다는 이유로 아이를 빼앗기는 여성들의 문제를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 캐릭터가 취한 것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이 미치광이 상태에서 저는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대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은 존 힌클리가 레이건 대통령 암살 기도를 실패한 날이다’입니다. 그리고 저는 레이건에 대해 더러운 욕을 내뱉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I found that when I was painting or drawing, writing or performing, I was in control of what I was presenting to people, because if I would be walking down the street or if I was at school I never knew how I was being perceived. When I was on stage, performing, I knew exactly what I was putting out, and people seemed to respond positively to what I did. I have never felt safe in a crowd, but I have always felt safe in front of one.

그림 그리고, 드로잉하고, 글을 쓰거나 퍼포먼스를 할 때 저는 제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걷거나 학교에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인식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대에 서서 공연할 때 저는 제가 드러내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사람들은 제가 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군중들 사이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들 앞에서 저는 언제나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dmund White
Novel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The idea that there were so many people out there who were uninstructed and suffering, like a seventeen-year-old boy living in a small town in Missouri, so the idea that you could actually reach and reassure these people was interesting, I liked it.

에드문드 화이트
소설가
미국 뉴욕 뉴욕
세상에는 미주리 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17살 소년처럼 교육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안심시키는 일에 관심이 생겼고 그 일이 좋았습니다.

 

Sarah Schulman
Activist and Novel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I have always approached things by creating my own institutions. When Jim Hubbard and I founded the MIX Festival 25 years ago, it was because mainstream gay festivals were not showing formally inventive work and the experimental community was not interested in queer work. Now there are people showing in that festival who were not alive when we started it. What we learned is how creating venue creates artists. When people see they can go somewhere and see work that is about them, they become motivated to make work, but if their story is not ever represented they become alienated from the entire process, so we have done this alternative institution building.

사라 슐만
행동주의자 겸 소설가
미국 뉴욕 뉴욕
저는 일에 접근할 때 언제나 제 자신의 인스티튜션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25년 전 짐 허바드와 제가 MIX 페스티벌을 시작했던 것은, 주류 게이 페스티벌이 형식적으로 창의적인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실험적인 커뮤니티는 퀴어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시작했을 때 세상에 없던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 어떻게 아티스트를 만드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자신들에 관한 작품을 보면 작품을 직접 만들고 싶은 동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재현되지 않으면 전체 프로세스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이 대안적인 인스티튜션을 설립해오고 있습니다.

 

Censorship
검열

 

-VOICEOVER-
Jonathan D. Katz addresses censorship when referring to the recent removal of David Wojnarowicz’s video “Fire In My Belly” from the exhibition “Hide/Seek: Difference and Desire in American Portraiture,” an exhibition he co-curated at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해설-
조너선 D. 카츠는 최근 국립초상갤러리에서 자신이 공동 기획자로 참여한 전시 ‘감추기/찾기: 미국의 초상에 있어서 차이와 욕망’에서 데이비드 워즈나로비츠의 비디오 작품 《내 뱃속의 불》(Fire in My Belly)이 제외된 사실을 언급하며 검열에 관해 말하고 있다.

 

Jonathan D. Katz
Art Historian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The Right, as all ideologues claim, wants to supplant a notion of a pluralistic democracy with an idea of a singular vision dominated exclusively by their perspective. They want to supplant discourse with abject props and look away from precedence, back to a realm of surety in which their particular ethnic grouping was unquestionably dominant. That vision of America is, thank God, dead except within the ideological Right, but they are doing their best to use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to weepily bring us back to small town America and its fictive constructs, and to there by soldering an increasingly fragmented movement around an America that never was. It is not without meaning that this exhibition took place at the Smithsonian, not at a large private museum.

조너선 D. 카츠
미술사학자
미국 뉴욕 뉴욕
모든 공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우파는 다수의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관점이 독점하는 하나의 비전으로 대체하려 합니다. 그들은 담론을 비굴한 지지로 대체하고 선례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들이 만든 특정한 민족적 그룹화가 의문의 여지 없이 지배적이라는 확신의 영역으로 회귀합니다. 신이 도와서 그러한 미국의 비전은 이데올로기적 우파 내부만 제외하고는 사라졌지만, 그들은 점차 파편화된 운동을 하나의 미국(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주위로 모아 이어 붙임으로써 우리를 미국의 작은 마을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거짓된 구조 속으로, 그 곳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재현의 정치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가 대형 개인 미술관이 아닌 스미소니언에서 열렸다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Let’s face it, the MetMoMa, or the Whitney could have done this exhibition and would not have given a damn what congress had to say. They are much freer than a federally funded institution and ironically it was a federal museum that sought to break the boycott, not one of New York’s great, supposedly leading, institutions.

정면으로 부딪혀보는 것입니다. 이 전시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근대미술관, 휘트니뮤지엄에서 열릴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의회가 하는 말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미술관들은 연방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인스티튜션보다 훨씬 더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이코트를 한 것은 뉴욕을 대표한다고 하는 거대한 인스티튜션이 아니라 연방정부의 미술관이었습니다.

The blacklisting on sexuality from art since the Mapplethorpe exhibition in 1989. Here we are in 2011 and my show is the first major queer show, which is ridiculous after years where queerness is in evidence in the realms of music and film and television and other power centers in American life. Yet the museum world, which understands itself as progressive and is credited as such, is now behind international banking in its political openness. What worried me was the social and political gesture that was intended to ultimately kill the blacklist has, at least for now, the distinct prospect of having reinvigorated it.

1989년 메이플소프 전시 이후 미술계에 섹슈얼리티 관련 블랙리스트가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는 2011년에 살고 있는데 제 전시가 최초의 메이저 퀴어 전시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음악, 영화, TV, 그 밖에 여러 권력의 중심 영역에서 퀴어성이 분명해지고도 몇 년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자부하는 미술계는 현재 정치적인 개방성에 있어서는 국제 은행보다 뒤쳐져 있습니다. 제가 염려했던 것은 궁극적으로는 블랙리스트를 죽이려 했던 사회적, 정치적인 제스처가 현재는 눈에 띄게 부흥에 대한 기대를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It is funny, we will see in the next couple of years whether or not this show had its intended effect, but it has created so much controversy, I am not entirely clicked whether a museum will take sexuality under consideration.  In this sense the Right got what they wanted out of this. They want pages, they want commentary, they want to make themselves central to definitions of culture and they have done that. Now when we make exhibitions about ourselves we necessarily must reference or address them.  Any museum proposal that goes forward is going to have to talk about what happens when The Catholic League attacks. They achieve this act, not on their own, let us be clear, but because Republican leadership jumped into bed with them as a needs of appealing to a tea party base.

재미있는 일입니다. 몇 년 안에 이 전시가 의도했던 효과를 가져올 지 아닐지를 보게 될 텐데, 지금까지 이것은 매우 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저는 미술관이 섹슈얼리티를 고려할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이 점에서 우파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지면에서 다루고 논평하는 것을 원하고 자신들이 문화의 정의에 관한 한 중심에 있기를 바라는데 그대로 다 이루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한 전시를 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들을 참고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모든 미술관의 전시 제안에서는 가톨릭 공동체가 공격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들은 이 행동을 스스로의 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공화당 지도세력은 정치적 기반을 얻기 위해 이들과 동침한 것입니다.

The show was up for a month before they attacked and I would not be surprised if they did focus groups trying to find a handy way to get it censored.  Paradoxically this a certain form of progress because in previous years, you could simply identify a work as queer and it would be killed. They can’t be nakedly homophobic anymore so they find new ways of getting what they want and in America, the discourse of religious offense, which called the work “hate speech,” appropriating our language and using our strategies against us.

전시 오픈 후 한 달이 지나고 그들이 쳐들어왔을 때 저는 그들이 쉬운 방식으로 검열하지 않고 단체들에 초점을 맞춘 것에 놀라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작품의 정체성이 간단히 퀴어로 규정되고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역설적인 형태의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전적으로 호모포비아가 아가 아니며, 미국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 종교적인 공격의 담론을 얻어 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습니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차용하고 그 전략을 우리를 향해 사용하면서 작품을 ‘증오의 발언’이라고 부릅니다.

It is not about religion to be sure; it is not even about our sexuality, it is just about gay power. It is about playing the old game of divide and conquer and building your base by in-common hating. That is a cynical, hateful anti-American politics that has moved alongside other American political developments since the founding of this country and it continues to deliver, which is why they do it. Old habits die hard.

이것은 분명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것은 더욱 아니며, 단지 게이의 권위에 관한 것일 뿐입니다. 편을 가르고 지배하는 오래된 게임, 그리고 공동 증오를 통해 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 건립 이래 줄곧 이어져오는, 미국의 다른 정치적 발전들과 함께 움직여 온 냉소적이고 증오에 찬 반미 정치학으로, 계속해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낡은 습관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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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ROJECT BY CARLOS MOTTA
Music: Shawn Hansen 
Animations: Peter burr
Script: Carlos Motta & Cristina Motta
Drawings: Carlos Motta &HumbertoJunca
wewhofeeldifferently.info

카를로스 모타 프로젝트
음악: 숀 한센
애니메이션: 피터 버
스크립트: 카를로스 모타, 크리스티나 모타
드로잉: 카를로스 모타, 움베르토 윤카
wewhofeeldifferently.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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