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ho Feel Differently (1/5)

*The artist Carlos Motta generously gave permission to post the text from his project http://wewhofeeldifferently.info/
en-kr translation by Jeong Hy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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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pt I : The Equality Framework: Stop Begging for Tolerance

1부 : 평등의 : 이상 인내를 구걸하지 말라

Marcela Sánchez
Director, Colombia Diversa
Bogotá, Colombia
The most important precedent is the 1991 Constitution. The articles related to equality and free development of personality do not mention the issue of sexual orientation, but a wide interpretation of these articles served to encompass issues of non-normative sexuality.

마르셀라 산체스
콜롬비아 디베르사 디렉터
콜롬비아 보코타
가장 중대한 선례는 1991년의 헌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평등 및 자유의 발전과 관련된 법조항들에서는 성적 성향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는데, 광범위한 해석에 따르면 여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non-normative)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포괄되어 있습니다.

 

Mauricio Albarracín
Activist and Lawyer
Bogotá, Colombia
During the 1990s, a very progressive jurisprudence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gays and lesbians was established. As of 1999, different bills proposing the recognition of the rights of same sex couples −basically, property and social security rights − were developed. In that context, in 2003 there was a bill supported by a group of activists, but when this initiative was defeated several activists decided that there should be an organization devoted to foster same-sex couples de facto recognition.

마우리시오 알바라신
행동주의자 변호사
콜롬비아 보고타
1990년대에 게이, 레즈비언의 보호와 관련한 대단히 급진적인 법률학이 등장했고 1999년에는 동성 커플의 권리 인식을 제안하는 법안이 진척되었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2003년에 행동주의자들이 법안을 제기했으나 발의가 거부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일부 행동주의자들은 동성 커플에 대한 인식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VOICEOVER –
Other countries, those that have already conquered formal equality, are currently concerned with the construction of a broader cultural framework that will prevail over formal equality and will search for a deeper transformation of social prejudices. This is the case of Norway, where the legal struggle over formal equality has been successful, but substantive equality, that is, the search for equal outcomes between the law and social life is, nevertheless, still pending.

해설
형식적으로 평등을 이룬 다른 국가들에서는 현재, 형식 상의 평등보다 우선하면서 근본적으로 사회적 편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보다 큰 문화적 틀의 구성을 고민한다. 노르웨이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이 곳에서는 형식적 평등에 관한 법률적인 투쟁은 성공을 거두었으나 본질적인 평등, 즉 법과 사회적 삶 사이에 동등한 결과를 모색하는 일은 여전히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Karen Pinholt
Norwegian LGBT Organization
Oslo, Norway
Up to the middle of last year, when it was agreed that we should have full marriage rights, it was a legal question: To have equal rights under the law. Today we have put much of that legal fight behind us because those rights are there. The fight now is elsewhere. We aim at having not just legal equality, but also real equality in our everyday lives. Our main tool in that fight is to increase awareness and the competence in LGBT issues in the general population, but also with people who work with others professionally: Health workers, people working in schools and education, leaders in management, etc. Most often in Norwegian society, they would like to treat us equally, but there is a lack of competence on how to do it. This means they often just ignore us, and ignore the fact that we sometimes need some special considerations to be properly treated as equal.

캐런 핀홀트
노르웨이 동성애자(LGBT) 협회
노르웨이 오슬로
지난 해 중반 무렵까지 결혼의 권리에 대한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법적인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법률상으로 평등한 권한을 갖는 것이지요. 지금 그런 권한은 보장이 되어서 법적인 투쟁은 뒤로 미뤄두었습니다. 지금 싸워야 하는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법적인 평등만이 아닌, 일상적 삶에서 ‘진정한’ 평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일반인과 전문인들 이를테면 의료 관련자, 교육기관 종사자, 관리분야의 책임자들 사이에 동성애 문제에 대한 인식과 권한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르웨이 사회에서 이들은 일반적으로 우리를 평등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방법적인 문제에 있어서 동성애자의 권한은 부재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우리의 존재 그리고 우리가 동등하게 대우받기 위해서는 간혹 특정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종종 그냥 무시합니다.

I’m a firm believer, and I also think we’ve seen that in Norway, that having the laws makes us equal. The legal framework is a strong and important signal for Norwegian society. Without that as a backing, all the negative things that we experience out in the real world derive from the fact that we are not equal before the law. Now that we are equal before the law, it is very difficult for our opponents to say: ‘I have the right to treat you badly.’ Now they have to find other ways to make their arguments. Since we are equal before the law, they see that the society at large and the lawmakers recognize us as human beings with equal rights. That means that it is much more difficult to treat us badly, but that doesn’t mean we are not treated badly. There are sub-communities in Norway where it is definitely not okay to be gay.

저는 법이 우리를 평등하게 해 준다는 것을 굳게 믿고 또 노르웨이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 사회에서 법적인 틀은 강력하고도 중요한 신호입니다. 그러한 뒷받침이 없다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이 법 앞에서 우리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됩니다. 법적으로 모두 평등해졌기 때문에 적들은 더 이상 ‘당신을 나쁘게 대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법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또 법률가들이 우리를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를 함부로 대하기 더욱 어려워졌음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노르웨이에는 게이를 절대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하부공동체 조직이 존재합니다.

 

Mauricio Albarracín
Activist and Lawyer
Bogotá, Colombia
There is a new moment in Colombian society where this topic is being discussed. I was stunned by the fact that recently a formerELN guerrilla commented that recently he could finally be openly gay in his group. This is not representative, but I thought it was an indicator that something is happening, and what is happening is that issues addressed in public discussions are beginning to infiltrate non-traditional places, or places that were traditionally homophobic. I think public discussion is very important; I don’t know how much it will contribute to people being more tolerant or less violent, but it does generate transformations and, at least, it brings a political project to light. In Colombia and in Latin America there is a political project that contemplates the recognition of gays, lesbians, bisexual and transgender persons. Legal decisions transform reality insofar as they destabilize an order. It is not as though they magically change reality, but they introduce an authoritative point of view and that point of view develops socially.

마우리시오 알바라신
행동주의자 변호사
콜롬비아 보고타
콜롬비아 사회는 이 사안이 논의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최근, 전 ELN 게릴라 멤버가 마침내 그룹 내에서 커밍아웃 했다는 사실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사례일 뿐만 아니라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이슈화 된 사안들이 비전통적인 장소, 동성애자에 대한 공포가 내재하는 장소로 침투해가기 시작했음을 말해줍니다. 공공의 논의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이 인내할지, 덜 폭력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프로젝트로 불을 당기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콜롬비아와 그 밖에 다른 남미 국가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을 재고찰하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법률 상의 결정은 질서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현실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마법처럼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권위적인 시선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사회적으로 발전해온 경위를 알리는 일입니다.

I thought this has been the beneficial influence in the case of couples, and it would be beneficial to have full equality. Court decisions entail several benefits; a strictly speaking political one is that those legal proceedings create a network, an ensemble of stakeholders who meet through their involvement in the lawsuit and continue to participate in order to guarantee the rights obtained. Its effect also implies the existence of a group of people who have worked on the issue and this generates growing adhesion. That group will work to preserve the change in the long term. Additionally, this may give rise to a cycle of protest, that is, a cycle of mobilization; because some rights have been obtained, people begin to realize that there are other rights that have not, or that there are other types of discrimination and violence, and they begin to work in those areas.

이것은 커플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왔고 완전한 평등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법기관의 결정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정치적인 것이란, 정확하게 말하면, 법률상의 결과들로 인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고소/고발로 대응해나가고 권리 수호를 위해 계속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모임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 문제를 위해 싸워온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낳습니다. 그 집단은 장기적으로 변화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싸워갈 것입니다. 더불어 이는 저항의 순환 즉 동원의 순환을 불러 일으킵니다. 몇 가지 권한들이 주어지면 그 후에는 아직 얻지 못한 권리가 무엇인지 혹은 다른 유형의 차별과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그런 부문에서 일을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This action triggers other movements and other mobilizations in other spheres. Another benefit is that by recognizing they have rights, same sex couples gain empowerment when faced with the authorities. People over 35, 40 or 45 years of age, who have been in a relationship for 15 years, decide to proclaim their union after having lived inside the closet, and this decision legitimizes their relationship. At present law students read judgments that protect same sex couples and question themselves about the ruling on marriage, different questions to those posed five or ten years earlier, because the context is different. The debate has shifted to a different place, there is a political discussion going on; politicians promise things, there are politicians who are openly gay or lesbian, and there are public policies that were born after these legal foundations. Once the Court took a step, other institutions have followed.

이러한 행동은 다른 영역에서 다른 운동과 다른 동원을 야기합니다. 또 다른 이점은 이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동성 커플들이 권위 앞에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35세, 40세, 45세 이상의 성인들로 15년 이상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이제 벽장 속에 갇혀 있던 삶에서 벗어나 커플로서 결합을 주장할 수 있고 관계를 합법화하게 됩니다. 지금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5년 전, 10년 전과는 다른 동성 커플 보호 판결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논의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거기에는 정치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약속을 하고 또 게이, 레즈비언임을 공공연히 밝히는 정치가들도 있으며 이러한 법적 토대 위에서 공공 정책들도 마련됩니다. 법원이 한 걸음을 내디디면서 다른 기관들도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Kjell Erik Oie
LGBT Rights Advocate
Oslo, Norway
There are two good things about legislation: One is that the government has said, ‘It is okay. We support it. We think it is great that you find each other.’ The other thing is that especially after we achieved the Partnership Law, we became very visible. Now that actually has changed because we have one law for everybody, the Marriage Act, but before, when we had to fill out official forms, we had to state whether or not we were married or lived in a partnership. Everybody knew the word partnership implied the difference between straight and gay people. After the Partnership Law came into effect, suddenly people talked about partnerships, legalized their partnerships, and straight people celebrated their gay and lesbian friends that wanted to live together. But now that we have the Marriage Act, and the Partnership Law is dead, we are invisible again.

키옐 에리크 오이
동성애자(LGBT) 권리 지지자
노르웨이 오슬로
합법화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부가 ‘수용한다. 지지한다. 서로의 만남을 잘 된 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파트너십 법’을 만든 이후에 우리들의 존재가 매우 눈에 띄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변화를 가져와, 지금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결혼법’만 존재하지만, 과거에는 서류를 작성하고 이전에 결혼한 적이 있는지, 파트너십으로 함께 살았었는지 여부를 진술해야 했습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에 파트너십이 다른 의미인 것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파트너십 법’이 발효된 이후 갑자기 사람들이 파트너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파트너십을 합법화했으며, 이성애자들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게이나 레즈비언 친구들을 축하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결혼법’으로 통합된 지금 ‘파트너십 법’은 죽었고 우리는 또 다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VOICEOVER-
In Korea, where legal reforms on the basis of sexual difference are far from being part of the government’s agenda, the LGBT community is demanding its legal rights.

해설
성적 차이에 근거한 법률 개정이 정부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아직 요원한 한국에서 동성애자(LGBT)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법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PARK Kiho
Chingusai
Seoul, Korea
박기호

친구사이
한국 서울

 

AseRothing
Researcher, University of Oslo
Oslo, Norway
Well it will be taught as, it usually starts out by saying that some people are homosexuals. At this point, it is specifically going from we to they, which is a distinct move in the author’s voice. It is the tolerance perspective that is very much the focus. Homosexuality is said to be something that we should accept, assuming that the classroom is a collective heterosexual entity. Teachers and students tend to state the same kind of things: We have to accept homosexuals because they are just like us and they are normal people.

아세 로팅
오슬로 대학 연구원
노르웨이 오슬로
글쎄요, 그건 보통 일부 사람들이 동성애자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교육될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문제는 정확히 ‘우리’에서 ‘그들’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목소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눈에 띄는 움직임입니다. 인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실은 이성애자들의 집합체로 상정되고 동성애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말해집니다.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그들도 ‘우리’와 똑같고 그들은 정상이므로 우리는 동성애자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This way of teaching sexuality is a way of reproducing heterosexuality as the norm, and it is also a way of reproducing the hetero-assumed students as a group that is allowed to draw the line of what is acceptable and to outline what sort of rights they have. Homosexuality is always presented as something that is okay, if it is real, but you shouldn’t try it. It is like saying: If you think you might be attracted to one of your same sex friends, wait and see; it might pass off. If you are really sure you are homosexual, then it is fine. You should come out and tell your parents and your friends. That is the implicit message. At the same time, the teachers and the books emphasize how difficult life is for many gays and lesbians in Norway and the difficulties they will presumably face. I think there is a good intention behind these statements. They intend to acknowledge the difficulties and homo-negativism that exist in Norwegian society. It is like saying: You will feel lonely and your parents might not like it. It will be difficult for you out there. And at the same time, they are saying: It is fully okay in Norwegian society today, it is not a problem; but in Iran, on the contrary, they have death penalties. They will have Iran as the contrast or old days in Norway.

이러한 섹슈얼리티 교육은 이성애를 정상으로 재생산하고, 이성애로 상정된 학생들의 수용 가능한 선을 긋고, 자신들의 권리의 윤곽을 설정하는 집단으로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동성애는 늘, 그것이 사실일 경우 괜찮은 것으로, 하지만 너는 시도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그것은 마치 ‘동성 친구에게 끌릴 것 같으면 다시 생각해봐라. 그건 그냥 지나가는 것일 수 있다. 정말로 네가 동성애자라고 확신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커밍아웃을 하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말해라’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선생님과 책에서는 노르웨이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가와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에는 좋은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노르웨이 사회에 존재하는 힘든 일들과 동성애 부정주의를 인식시키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외로울 거고 부모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거다. 밖에 나가면 힘들 거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완전히 괜찮은 일이고 문제가 되지 않아. 하지만 반대로 이란에서는 사형을 당한단다’라고. 이란이나 과거의 노르웨이를 대비되는 예로 제시합니다.

This tragedy story is definitely alive in schools. I have also heard students saying: If I discovered I was gay, I would commit suicide. Homosexuality is presented as something problematic, and you should really avoid it and pray to God you will never be there. It is not attractive at all. It is not presented as something that you might like or something you should try out and that might bring you a good life. None of the good stories of queer lives are made visible.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는 학교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도 학생들이 ‘내가 게이라면 자살할거야’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동성애는 문제가 있는 것, 반드시 피해야 하며 절대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코 매력적인 것이 아닙니다. 좋아할 수도 있다거나 시도할 수도 있는, 그래서 좋은 삶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으로 얘기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삶에서 좋은 이야기들은 전혀 가시화되지 않습니다.

 

Tone Hellesund
Stein Rokkan Institute for Social Studies
University of Bergen, Norway
Although homosexuality is now equal according to the Norwegian legislation, and anti-gay discrimination bills have also protected it, it is still seen culturally as something inferior to heterosexuality. The ‘good life’ in Norway, what all parents want for their children, the best life you can get, is still very much a heterosexual life. Even though as a homosexual, you can still have a ‘good life’ by having children, getting married and living in harmony as a nuclear family, I think most Norwegians see heterosexuality as the ideal life.

토네 헬레순
베르겐 대학 스테인 로칸 사회학 연구원
노르웨이
노르웨이 법에 따라 지금은 동성애가 평등하게 인정되고 동성애 차별 반대 법안도 보호되지만, 문화적으로 동성애는 여전히 이성애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노르웨이에서 ‘좋은 삶’,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원하는 것,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삶은 여전히 아주 이성애적인 삶입니다. 동성애자도 결혼을 하고 조화로운 가족을 이루어 아이를 가지고 ‘좋은 삶’을 꾸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노르웨이인들은 이성애를 이상적인 삶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AseRothing
Researcher, University of Oslo
Oslo, Norway
When Norwegianness and Norwegian culture is defined in relationship to others, gay rights and tolerance of homosexuality seem to represent it. In a way, Norwegiannessis heterosexuals being tolerant towards homosexuals. But some pictures in the textbooks will create these kinds of contrasts. Take a look at this picture: This is about ways of living before and now. It is about marriage and families. In one picture, you have two men and a little girl in the middle reading a paper in the park, and in another one, there is a Masai man and a handful of Masai women in the background. It is a really primitive and dark picture. The first picture’s caption says that homosexual partnerships are allowed in Norway. The second picture’s caption says that Masai men can have several wives. Consequently, they make this opposition between the really pre-modern Masai and the modern Norwegians.

아세 로팅
오슬로 대학 연구원
노르웨이 오슬로
노르웨이성과 노르웨이 문화를 다른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한다면, 동성애 권리와 동성애에 대한 관용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면 노르웨이성이란 동성애자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이성애자들의 것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일부 그림들은 이러한 대비를 만들어 나갑니다. 이 그림을 보십시오. 과거와 현재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의 그림에서는 공원을 배경으로 두 명의 남자 사이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있고, 또 다른 그림에서는 한 명의 마사이족 남자와 그 뒤로 여러 명의 마사이족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매우 원시적이고 어두운 그림입니다. 첫 번째 그림 설명에는 노르웨이에서는 동성애 파트너십이 허용된다고 적혀 있고, 두 번째 그림에는 마사이족 남자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전근대적인 마사이족과 근대 노르웨이인들 사이에 실제로 어떤 대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The Masai are supposed to be seen as the definite opposite of gender equality, which is the ideal in Norway. One of the interesting things here is that in this picture a gay couple is representing gender equality, but this book was published before gay couples actually had the right to adopt children. Therefore, this picture is representing Norway as a country that was gay-friendlier than it actually was at the time. It is very paradoxical. But what happens in the chapters about sexuality is different. There are two different sections: One on cultural norms that usually deals with gender and sexuality and another more traditional chapter on sexuality. And in that chapter the we is definitely heterosexual.”

마사이족은 노르웨의의 ‘이상’인 성적 평등에 대한 절대적인 반대 사례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그림에서 동성애자 커플이 성적 평등을 대표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게이 커플의 자녀 입양 권한이 보장되기 이전에 출판된 것입니다. 결국 이 그림은 노르웨이가 당시 실제보다 더 친동성애적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단히 역설적입니다. 이미지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장마다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 섹션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문화적 규범에 관한 섹션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전통적인 섹슈얼리티에 관한 섹션입니다. 이 장에서 ‘우리’란 절대적으로 이성애자를 가리킵니다.

 

Franklin Gil Hernández
Activist and Academician
Bogotá, Colombia
A movement based on sexual issues should be talking about other things. I feel that the movement speaks very little about sexuality, very little about proposing changes to this society, about how to experience sex, how to experience solidarity beyond marriage, beyond a couple; it speaks very little about other proposals. I understand that having rights is very important, but the agenda should be more ambitious in the sense of proposing a more structured change in the sexual order, which is an order that continues to discriminate; even with gay marriage, there are many items that are left outside the agenda.

프랭클린 에르난데스
행동주의자 학자
콜롬비아 보고타
성적인 이슈에서 시작되는 운동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런 운동에서는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거의 얘기하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제안한다거나 성을 경험하는 방법, 결혼과 커플 개념을 넘어서서 연대감을 경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거의 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권리를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성적인 질서, 다시 말해 계속해서 차별을 만들어가는 질서에 관한 보다 구조적인 변화를 제안하는 의미에서 좀 더 야심 찬 제안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동성애 결혼이 이루어져도 그 바깥에는 많은 문제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Fernando Serrano
Anthropologist
Bogotá, Colombia
What is happening to the movement at present is that its effervescence for the affirmation of identity has made it forget other transversal spaces: class issues, labor problems, health policies. We have to think about how to construct another articulation place that does not eliminate differences and that does not solve things merely naming them. But what do we do to avoid the answer being: here is the section of homosexual bodies; here is the section of black bodies; here is the section of indigenous bodies? That is what public policies do.

페르난도 세라노
인류학자
콜롬비아 보고타
현재 운동의 상황을 보면, 정체성을 확인하는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가로지르는 또 다른 공간들, 즉 계급 문제, 노동 문제, 의료 정책들이 잊혀져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이들을 제거하지 않고 호명만 할 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또 다른 분절의 장소를 어떻게 구축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동성애자들의 몸, 여기는 흑인들의 몸, 여기는 원주민들의 몸이라는 구역화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MONG Choi
Minorities Activist
Seoul, Korea


소수자를 위한 행동주의자
한국 서울

 

Sarah Schulman
Activist and Novel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We are constantly being told that things are so much better and we have made so much progress. I really think we have an enormous amount of change, but change is not the same thing as progress. The way gay people are contained, made secondary, and diminished is far more sophisticated now than it was twenty years ago. Gay people are being told that the only things they need are marriage and military service and that everything else is fine. We are being told we are completely treated fairly in every way and that we are an integrated part of this country. Thirty years ago, to be anti-gay was a normative thing. Most people did not know anything about gay people; they did not know they knew gay people, or what gay people’s hopes were.

사라 슐만
행동주의자 소설가
미국 뉴욕 뉴욕
상황이 아주 많이 나아졌고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계속 듣습니다. 실로 대단히 큰 변화가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변화가 진보와 같지는 않습니다. 게이들이 수용되는 방식, 2순위로 여겨지고 사라지는 방식은 20년 전 보다 훨씬 더 세련되어졌습니다. 게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과 군대 문제이고 그것만 되면 나머지는 다 괜찮다는 말들을 합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고 이 나라의 일부로 통합되었다는 말을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30년 전, 게이에 반대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이에 대해 알지 못했고, 자신들이 게이를 알고 있는지도, 게이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Today everybody in this country knows an openly gay person, sees them on television, in their families, and understands what gay people stand for and/or want, so to be anti-gay today is much more dramatically vicious and cruel than it was in the past when you did not know the names and faces of the people you were affecting. In that context, in the U.S. we have lost every ballot measure, thirty-one out of thirty-one, in the last few years, meaning a huge number of people in this country are viciously anti-gay and willing to vote anti-gay. We also have a president who does not support gay people, so we are in a situation where the opposition has a more negative meaning than it did twenty years ago, yet we are supposed to pretend this means nothing and has no impact on us, the real people, our relatives and neighbors. Why are we being told this condition of profound oppression is actually progress? It’s not.

오늘날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공공연히 게이를 알고 있고 TV나 가족들 사이에서 이들을 마주하며, 이들이 무엇을 대변하고 원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것은 이들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던 과거보다 훨씬 더 사악하고 잔인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몇 년간 미국 내 게이 찬반 투표에서 31개 지역 중 31개 전역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 나라의 어마어마한 인구가 동성애를 극도로 반대하고 있고, 의지를 가지고 반대표를 던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년 전보다 더욱 부정적인 반대가 일어나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 실제 사람들, 우리의 친척과 이웃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인 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러한 근본적인 억압의 조건을 실질적인 진보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From Identity Politics to Queer Politics: The Risks of Assimilation
아이덴티티 정치학에서 퀴어 정치학으로: 동화의 위기

Tone Hellesund
Stein Rokkan Institute for Social Studies
University of Bergen, Norway
Homosexuality is still seen as the truth about a human being. In Norwegian, we use the word legning; we speak of homofillegning, a homosexual inclination, which I see as a very essentialist framing of sexuality. That is a term that is very much used in the public debate and in every day conversations amongst general people. It is assumed that if you are a homosexual, you have this ‘inborn inclination’; your core is that you were born a homosexual, and there is nothing you can do about it. This is a very strong story in the Norwegian context. In order to gain citizenship rights, to give homosexuals more space and to give us the right to live as ordinary citizens, there has been a discourse focusing on homosexuality as an essence, thus promoting an essentialist agenda. There has also been a strong focus on the suffering of homosexuals.

토네 헬레순
베르겐 대학 스테인 로칸 사회학 연구원
노르웨이
동성애는 여전히 인간에 관한 ‘진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인들 사이에서는 ‘경향성’(렝닝, legn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동성애 성향을 나타내는 ‘호모필렝닝’(homofillegning)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것이 섹슈얼리티를 매우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용어는 공적인 토론과 일상적 대화에서 아주 많이 사용됩니다. 여기에는 당신이 동성애자라면 그것은 ‘타고난 성향’이라는 의미가 상정되어 있습니다. 핵심은 동성애자로 태어났으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문맥에서 이것은 대단히 강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입니다. 시민권을 주고, 동성애자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 일반인처럼 살 수 있는 권리를 주기 위해 동성애가 ‘본질’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담론이 있어왔고 따라서 선천적 동성애 문제가 부각되었으며 아울러 동성애자들의 고통에 강력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왔습니다.

The suicide narrative is very strong in Norway, particularly since a report was published in 1999 that showed a higher occurrence of suicide attempts among young homosexuals than among heterosexuals. Those statistics have been used heavily by the homosexual organization to claim rights. On the one hand, the focus on inborn identities, the essentialist understanding of homosexuality as a fundamental difference, the focus on suffering and the cry for tolerance, have been the roots that have led to obtaining citizenship rights. On the other hand, I think it is a very problematic discourse. Even today, when we have citizenship rights, that narrative is holding homosexuals down as something fundamentally different, as something that should be tolerated and felt sorry for.

노르웨이에서는 특히 1999년에 젊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이성애자들보다 많은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자살 담론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통계자료는 동성애자 조직이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 상당히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천적 아이덴티티에 초점을 맞추어 동성애를 본질적인 차이로 이해하는 것, 고통과 인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저는 이것이 매우 문제가 많은 담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그 서사는 동성애자들을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로, 인내하고 안쓰럽게 생각해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Ellen Mortensen
Center for Women’s Research
University of Bergen, Norway
The theoretical foundation for the political work done is not queer theory but identity politics. Something that is peculiar to the Scandinavian countries is that there is quite a short distance between certain academicians, especially in the social sciences, and the policy makers. For instance, within academic feminism, they were instrumental forwarding many of these equal rights law proposals when it comes to gender. Likewise, within the gay and lesbian community that is still fueled by what I would call identity politics and the clear-cut categories of gay and straight. They have been able to make successful political impact precisely because of this strategy. They have made these legislation proposals on the basis that, for instance, gays and lesbians are a minority group that should have equal rights. It has not been made on the basis of queer theory, because that muddles the terrain.

엘렌 모르텐센
베르겐 대학 여성연구센터
노르웨이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데 근간이 되었던 이론은 퀴어 이론이 아니라 아이덴티티 정치학입니다. 특정 학자들, 특히 사회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것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특이점입니다. 페미니즘 학문 내부, 젠더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이것은 여러 가지 평등권을 법적 안건으로 진척시키는 중대한 동력이었습니다. 게이, 레즈비언 공동체 안에서도 그것은 제가 아이덴티티 정치학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분명한 범주화에 의해 여전히 힘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올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이 전략 덕분입니다. 예컨대 이들은 게이와 레즈비언 집단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 소수자 그룹이라는 데 근거를 두고 이 같은 법안들을 제안해왔습니다. 퀴어 이론은 영역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이 같은 근거가 될 수 없었습니다.

 

MONG Choi
Minorities Activist
Seoul, Korea


소수자를 위한 행동주의자
한국 서울 

 

Norman Anderssen
Social Psychology Professor
University of Bergen, Norway
If you talk about gender or sexual categories, the clearer you make these distinctions and the more you thematize them, the easier it is for people to have certain opinions about some of these categories. It is a kind of logic, whereby the more you insist that there are homosexuals, bisexuals and heterosexuals, the more you let people have opinions about these groups. To really dissolve negative attitudes, we need to dissolve our concepts and notions of sexual distinctions, including gender. This is a very radical position in line with general queer theory: As long as we have these very strong categories, we will also have negative attitudes.

노르만 안데르센
베르겐 대학 사회심리학 교수
노르웨이
젠더나 성적 범주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구분을 분명하게 하고 주제를 명확하게 할수록 보다 쉽게 그 범주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논리로서,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성애자들이 존재한다고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이들 집단에 대한 의견을 더 많이 개진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없애기 위해서는 젠더를 포함하여 성적 구분에 관한 관념과 개념들을 용해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퀴어 이론과 같은 선상에 있는 매우 급진적인 입장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범주화하는 한 우리는 부정적인 태도들도 함께 안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CHOI Hyun-sook
Minorities Activist and Lesbian Presidential Candidate
Seoul, Korea

최현숙
소수자를 위한 행동주의자, 레즈비언 단체 회장 후보
한국 서울 

 

Karen Pinholt
Norwegian LGBT Organization
Oslo, Norway
My agenda is to make sure that everyone who is LGBT can be that in exactly the way they want to be. You have the right as a person to define who you are and live that life, and others should not limit you. That also means that as an LGBT movement, I can’t tell other people how to be gay or that they are being gay in a wrong way. The Gay Movement, in an attempt to find the gay identity, which is an important quest, has been moving on so fast that it has lost a lot of people. Some feel that being on the back of a truck in a Pride Parade wearing next to nothing and dancing to disco music is a normal way to be gay. Whereas others think that getting married and getting 2.3 kids, or whatever is the average, is a normal way to be gay, because you are supposed to be part of the gay culture. My objection is to both. I think that we should work towards making it possible to be gay exactly in the way you are gay, and to recognize that there are gays in all sectors of Norwegian society. There is no right or wrong way to be gay. There is only one thing that is wrong, and that is living a life you don’t want to live.

캐런 핀홀트
노르웨이 동성애자(LGBT) 협회
노르웨이 오슬로
저의 과제는 모든 동성애자(LGBT)들이 정확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할 개인적 권한을 가지고 있고, 다른 누구도 당신을 제약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성애자(LGBT) 운동의 일부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 게이가 된다고도, 뭔가 잘못되어서 게이가 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이 운동은 게이 아이덴티티를 찾으려는 시도이고 중대한 문제인데 매우 빠르게 움직여와서 많은 사람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에서 트럭 뒤를 따라 가며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채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을 일반적인 게이의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평균이 무엇이건 간에, 어떤 사람들은 당신도 게이 문화의 일부이므로, 결혼을 하고 두 세 명의 자녀를 두는 것을 일반적인 게이의 삶이라고도 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에 모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정확히 우리 게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고, 노르웨이 사회 모든 부문에 게이가 있다는 인식이 가능하게끔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이가 되는 옳고 그른 방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 잘못 된 것은 당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How Did We Get Here? The Same-Sex Marriage Debate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했는가? 동성 결혼 논쟁

-VOICEOVER-
One of the central issues in the struggle between LGBT rights activism and queer thinkers and activists is same-sex marriage. The assimilationist character of same-sex marriage, condemned by queer activists and theorists, clashes with the emancipatory consequences granted to this legislation by rights activists, who see in this law the definite step to gain full citizenship and equality.

해설
동성애자(LGBT) 권리 운동과 퀴어 지식인들 및 행동주의자들 사이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문제는 동성 결혼이다. 사회 동화적인 성격의 동성결혼은 퀴어 행동주의자와 이론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권리 수호를 위해 싸워 온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마련된 입법에 부여된 해방적인 결과와 충돌하고 있다. 퀴어 행동주의자들은 완전한 시민권과 평등을 획득하기 위한 절대적인 단계를 이 법에서 찾는다.

 

Tone Hellesund
Stein Rokkan Institute for Social Studies
University of Bergen, Norway
After the period of focusing on visibility, gaining individual rights, and anti-discrimination laws, the work for partnership or marriage rights started in the late 1980s. That has basically been the focus since then, the right to marry. You can see that in many different ways. You could see it as a reflection of the political climate of these decades: To focus on family values and respectability; on homosexuals being good, respectable and family oriented citizens has been a very strategic and wise way of framing the cause. What has been interesting is that the critique of the nuclear family and marriage, those kinds of debates that were present in the 1970s disappeared from the public agenda in the 1990s and the 2000s.

토네 헬레순
베르겐 대학 스테인 로칸 사회학 연구원
노르웨이
가시성, 개인의 권리 확보, 차별 반대 법안에 초점을 맞췄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 1980년대 후반부터 파트너십이나 결혼의 권리에 대한 주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줄곧 결혼이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데, 당시 가족의 가치와 존중에 초점을 두는 정치적 기온의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에게 좋은 시민, 존중할 만한 가족 지향적인 시민이 된다는 것은 목적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매우 전략적이고 현명한 방법이 되어왔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70년대에 존재하던 핵가족과 결혼에 대한 비판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공공의 의제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There have been very few opposing voices in the public. Although many of us have been critical of the family and the respectability orientation of the Norwegian Movement, many of us still agree that to gain marriage rights has been an important step in the achievement of citizenship rights. Achieving the ‘Gender Equal Marriage Law’ in 2009 was kind of the final victory in regard to gaining full citizenship rights as queers in Norway. Despite the fact that many of us want to abolish marriage, we can still see that the right to marry has been an important step.

대중들 사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노르웨이 운동에서 나타나는 가족과 존중 지향에 대해서는 우리들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결혼의 권리가 시민권을 얻기 위한 중요한 단계라는 데에 여전히 동의하고 있습니다. 2009년 ‘젠더 평등 결혼법’(Gender Equal Marriage Law)이 통과된 것은 노르웨이에서 퀴어로서 완전한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차원에서 최종적인 승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은 결혼의 철폐를 원하지만 그래도 결혼의 권리가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Arnfinn Andersen
Gender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Oslo
Norway
The struggle to get the same rights as heterosexual married people in this country was a way to get formal citizenship, not only as it pertains to the law, but also as a way of recognizing our status as citizens in equal terms. I would say that the idea of marriage was a good platform to make Norwegians aware of our inequality because everything in the social democratic society is organized around marriage.

아른핀 안데르센
오슬로대학 젠더연구센터
노르웨이
이 나라에서 이성애자 기혼자들과 같은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은 공식적인 시민권, 즉 단지 법적인 적용뿐만 아니라 동등한 차원에서 시민의 지위를 인식하는 길이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결혼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개념은 노르웨이인들에게 우리의 불평등을 인지하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María Mercedes Gómez
Political philosopher
Bogotá, Colombia
It is much easier to say that one does not agree with gay marriage because it repeats the traditional pattern if one does not need health insurance, or protecting one’s children, or a residency visa. I always take into account what the scope of my political stance is at every moment, and what I can do to make sure that my political stance does not repeat or generate a form of injustice.  Marriage generates a series of individual rights that are valid and necessary for people who do not have other privileges, and in that sense I think the option must exist. The consequence may be that instead of undergoing a radical transformation, society will move along lines that will continue to be unfair for many: for example, having access to certain individual rights only through marriage. But since the space for radical transformation does not seem to be a possibility in the short term, I think that one must work strategically so that the people who want and need this right may exercise it.

마리아 메르세데스 고메스
정치철학가
콜롬비아 보고타
동성애자 결혼이 전통적인 패턴을 반복한다는 이유로 동성애자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만약 의료가 필요 없고 아이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면 또 거주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면 아주 쉬운 일일 것입니다. 저는 매 순간 나의 정치적 시각의 반경에 대해 생각하고, 나의 정치관이 부당한 형태를 반복하거나 생성하지 않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생각합니다. 결혼은 다른 특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치 있고 필요한 일련의 개인적 권리를 만들어줍니다. 그 점에서 저는 선택 사항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아마도 급진적인 변형을 거치지 않을 것이고, 사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부당한 길을 가게 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결혼을 거쳐야만 특정한 개인의 권리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까운 시일 안에 급진적인 변혁이 도래할 것 같지는 않으므로, 이러한 권리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steban Restrepo
Professor of Law
Universidad de los Andes
Bogotá, Colombia
Why consider that the core of LGBT movement has to be the family issue? That is a mistake, firstly because we want to colonize the most oppressive institution, the one in which people have been more oppressed, traditionally. How is it possible that if women have criticized for years the pattern of traditional family, we should wish to conquer marriage, that profoundly alienating and subordinating institution? Then comes the question of normalization. The sector of activism that has promoted the family issue is that liberal sector within the gay community, which says; we are equal, we are not a threat, the only thing that renders us different from you is that we like persons of the same sex, but that is restrained to the bedroom. As for the rest, we are like everyone else; we don’t rape children or kill them.

에스테반 레스트레포
로스 안데스 대학 법학 교수
콜롬비아 보고타
왜 동성애자(LGBT) 운동의 핵심이 가족 문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그것이 실수입니다. 첫째, 우리는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무엇보다 많이 억압해 온 최고의 탄압 기구를 식민화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본질적으로 배타적이고 종속적인 제도인 전통적인 가족의 패턴을 여성들이 수 년간 비판해 왔는데,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얻어내려 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이유는 정상화(normalization)의 문제입니다. 가족 문제를 이슈화해 온 행동주의 분파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진보성향인데,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우리는 평등하며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를 당신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그것은 침대에 국한된 문제일 뿐이다. 다른 부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어린이를 강간하지도 죽이지도 않는다’라고.

Might it not be that a long period of subordination creates a series of different cultures that are important to preserve, and that it would be an obvious mistake to lose? The monogamous dynamics will turn against the gay community itself or against the LGBT community: before, they did not allow us to get married; now the ideal thing is to be married. What happens with all those of us who have made of promiscuity, of polygamy and of all those kinds of alternative forms of experiencing sexuality a way of living? Are they going to transform them into pariahs among the pariahs?

오랜 종속의 역사는 보존해야 할 다른 중요한 문화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것을 잃으면 잘못하는 것이지 않을까? 일부일처제는 게이 커뮤니티 그 자체 혹은 동성애자(LGBT) 커뮤니티에게서 등을 돌릴 것입니다. 이전에 그들은 우리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하는 것이 이상적인 일입니다. 혼교, 일부다처제인 우리들, 그리고 섹슈얼리티 경험을 삶의 방식으로 취하는 모든 대안적인 형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버림받은 이들 중에 더 버림받은 이들로 변해 갈까요?

The other issue is that the fact that same sex couples are allowed to get married and may adopt children does not imply that homophobia is over, because homophobia exists in people’s minds; homophobia is a prejudice, and prejudices are lodged in a very complex way in the minds of people, in educational processes, in processes of basic socialization, at school, at home. To transform this, the Law has a minimal potential; it may raise the issue, it may show a hidden social phenomenon, it may normalize it in the sense that it begins to refer to the situation of many persons as an issue of political concern, may lead to self-questionings, but transformations are always followed − and this has been shown in the context of the United States − by a homophobic backlash. The homophobic forces within society resist.

또 다른 이슈는 동성 커플들의 결혼과 입양이 허용되었다고 해서 동성애자공포증 즉 호모포비아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호모포비아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호모포비아는 편견이고 편견은 사람들의 생각, 교육, 학교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사회화 과정 속에 매우 복잡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법’이 최소한의 가능성을 줄 수는 있습니다. 법적으로 이것을 이슈화할 수 있고 그러면 감춰진 사회적 현상을 드러낼 수 있으며, 정치적인 사안의 하나로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 문제를 정상화/일반화할 수 있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향한 물음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에는 언제나 호모포비아의 역류가 뒤따릅니다. 미국의 경우 늘 그래왔습니다. 사회 내부의 호모포비아적인 힘이 저항을 합니다.

This occurs in every sphere: when in 1954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prohibited racial segregation in schools, George Wallace, the governor of Alabama said: “I won’t comply, I simply won’t comply; here our cultural life is based on the separation of white and black persons,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of Justice cannot come and tell me that I have to accept blacks in my children’s school; I’m not going to do it.” Why wouldn’t the same thing happen in an issue that is linked to one of the greatest anxieties in Western culture: the preservation of masculinity?

이것은 모든 분야에서 다 일어납니다. 1954년 미국 대법원이 학교에서의 인종 차별을 금지했을 때 앨러배마의 주지사 조리 월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따르게 않겠다. 그냥 따르지 않겠다. 이 곳 우리의 문화적 삶은 백인과 흑인의 분리에 근거해 있고, 미국 사법재판소는 나에게 내 아이들의 학교에 흑인을 수용하라고 말할 수 없다.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가장 큰 불안의 문제인 ‘남성성의 보존’과 관련된 사안에서 이와 똑 같은 일이 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Mattilda Bernstein Sycamore
Activist
Santa Fé, New Mexico
United States
The messaging of assimilation is the ‘We’re just like you’ mentality. When gay people say: ‘We are just like straight people, we have no differences, except for who we might want to have sex with.’ Marriage, military inclusion, adoption, ordination to the priesthood and hate crimes legislation have become the corner stones of gay assimilation. As queers we grew up in a world that basically wanted us to die or disappear. I think we shouldn’t grow up and want to become part of that same world and change nothing. The issue of gays in the military is the most obvious. Instead of saying we want to be part of the military, we should be saying that the U.S. is responsible for more violence in the world than any other country, bombing, terrorizing, plundering indigenous resources, and establishing corporate control everywhere. We should be saying that we need to end the military, which is a dominant institution of imperial, colonial and genocidal violence. I would say the majority of us grew up in the ruins of marriage. Why are we now saying that is what we want? What does marriage mean? For decades, queers had been finding ways to live and love outside of marriage, and with the ‘assimilationist agenda,’ it is all thrown in the trash.

마틸다 번스타인 시카모어
행동주의자
미국 뉴멕시코 산타페
동화의 메시지는 ‘우리는 그냥 당신과 똑같다’라는 생각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우리는 섹스 상대를 제외하고는 이성애자들과 똑같고 아무런 차이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결혼, 군대, 입양, 사제 서임, 증오범죄 법안 등이 게이 동화에 발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죽거나 사라지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자랐습니다. 그렇게 자라서도 안되고, 그와 똑 같은 세계의 일원이 되어 아무 것도 바꾸지 않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의 게이 문제는 가장 두드러지는 이슈입니다. 우리는 군대의 일원이 되기 원한다고 말하는 대신, 미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폭력, 폭격, 테러, 현지 자원의 약탈, 그리고 도처에서 일어나는 기업적 통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대학살적인 폭력의 지배적인 제도를 포괄하는 군대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파괴된 결혼 생활 속에서 자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왜 그게 우리가 원한 것이라고 말해야 하나요? 결혼이 무슨 의미입니까? 수 십 년 동안 퀴어들은 결혼 제도 바깥에서 살아가며 사랑하는 길을 모색해왔는데 ‘동화주의적인 의제’가 일어나면서 이 문제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Ryan Conrad
Activist
Lewiston, Maine
United States
For us is a materialist class critique to actually talk about marriage, to wipe away this gloss of affect that portrays marriage as being about love and family, when it is actually a social contract between two people and the state and the transfers of property, power and money between them. I think it is really hard for people to step back from this sheen that has been put over marriage.

라이언 콘라드
행동주의자
미국 메인 루이스턴
결혼에 대해 실질적으로 이야기하기, 결혼을 사랑과 가정에 관한 것으로 그려내는 외장 효과 걷어내기, 결혼이 사실상 두 사람과 국가 사이에 이루어지는 계약이며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재산과 권력, 돈의 이동에 관한 것이라는 얘기들은 속물 계층의 비판으로 들립니다. 결혼에 덧씌워져 온 번드르르한 외관에서 물러서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Gay and lesbian activists have been digging up this rhetoric of affect and love, questioning how love can be outlawed, and it is actually not what everyone is talking about but a distraction from actually talking about how sexual identity decides whether people live or die, have access to healthcare or not, can move across boarders, and access jobs. People aren’t talking about that piece. The class critique is huge for me and comes from an urban/rural critique as well. Not to suggest that there aren’t poor people in urban settings, but in Maine in particular rural equals poverty. For me there is always a critique of urban gays with more money than the rest of us setting the agenda while people outside of major urban centers don’t have access to any resources and are most at risk for poverty and HIV. It is pretty ridiculous how urban-centric the conversation has become something, which is part of the class critique as well.

게이, 레즈비언 운동가들은 이러한 애착과 사랑의 수사학을 파헤치면서 사랑이 어떻게 불법일 수 있는지를 탐구해왔습니다. 사실 문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죽음이, 의료에의 접근 여부가, 경계를 넘어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어떻게 성 정체성에 의해 결정되는지에 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끔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계층 비판은 매우 큰 문제이고 이것은 도시/시외 지역에 관한 비판에서 유래하기도 합니다. 도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다는 게 아니라, 특히 메인 지역 같은 시외란 곧 빈곤과 동의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우리보다 부유한 도시 게이들에 대한 비판은 항상 있어왔던 반면, 주요 도심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자료에도 접근할 수가 없고 빈곤과 에이즈 바이러스 HIV 감염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대화가 얼마나 도시 중심적으로 되어왔는지를 보면 상당히 기가 막힙니다. 그것은 계층 비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GermánRincón
Lawyer and Activist
Bogotá, Colombia
In legal terms we have a second-class citizenship, not a fifth-class any longer, but a second-class one. We have made a lot of progress, but from a social perspective we are far behind and at this moment there is a wave of conservatism. Our homosexual life was undercover; now that we have entered the public life, so legitimized as individuals and as couples, we have become part of the heterosexual antiseptic, antibacterial little model. Only couples, only with one person, in what conditions yes, in what conditions no, all that regulated model. People say “now we can’t be promiscuous because we are legal” and I think that is a terrible loss; there are people who wonder: who got us into this?

헤르만 린손
변호사 행동주의자
콜럼비아 보고타
법률 용어로 말하면 우리는 제2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5위는 아니지만 2위입니다. 지금까지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여전히 한참 뒤쳐져 있고 지금 이 순간에는 보수주의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성애적 삶은 내내 비밀로 숨겨져 왔다가 이제야 공공의 삶으로 진입하여 개인과 커플로서 합법화되었고, 이성애적 살균제, 항균성 모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커플로서만, 단 한 사람하고만, 어떤 조건에서는 되고 어떤 조건에서는 되지 않는, 통제된 모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는 합법화되었으니 혼교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엄청난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There are gay persons who disagree, especially with regard to the property rights issue, because they believe that if they take a young boy in, in a week he will take away from them half of their patrimony. This has generated a terrible impact. In Colombia, same sex couples were violently pulled out of the closet, whether they liked it or not. But that, hegemonic model has made us lose our underground status, which has wonderful advantages. We have to begin talking about discourses other than the hegemonic model; I have strongly positioned the question of triples, not of couples but of triples, the relationships between three persons on the affective, the erotic, the genital, the family plane.

게이 중에는 특히 재산권 문제와 관련하여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린 소년을 들이면 일주일 후에 그 소년이 유산의 절반을 가져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안 좋은 효과를 낳았습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 없이 폭력적으로 공개되었습니다. 훌륭한 장점들이 있는 우리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위상을 헤게모니적인 모델이 앗아갔습니다. 우리는 헤게모니적인 모델이 아닌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세 명의 섹스를 강하게 주장해왔습니다. 커플이 아니라 애착관계의, 에로틱한, 성기 중심적인, 가족적인 면을 지닌 세 사람의 관계입니다.

It is the issue of the social family and not the biological one; the construction of family based on the social and not the biological relations. Some people tell me not to speak about this in public, it will damage what we have already accomplished. In Colombia we have made progress; in the issue of pensions, jurisprudence has established that if for instance, a man dies, two women receive pensions. We are waiting for the same to happen when a gay dies, that the two lovers receive pensions and to extend this further, to move forward along those lines. Which is a very interesting debate in the Court, namely that social like reveals realities beyond the couple. We will try to use that to open up some space

이것은 생물학적인 가족이 아닌 사회적인 가족의 문제입니다. 생물학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기반하는 가족의 구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밖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미 이루어놓은 것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고. 콜롬비아에서는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연금 문제에 관한 법이 만들어져, 예를 들어 한 명의 남자가 죽으면 두 명의 여자들이 연금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게이가 죽었을 때도 같은 내용이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두 명의 애인들이 연금을 받고 그 선상에서 확장, 진척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이것은 소위 커플을 넘어서는 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논쟁입니다. 공간을 열어가기 위해 우리는 이것을 시도해 볼 것입니다. 

 

Ellen Mortensen
Center for Women’s Research
University of Bergen, Norway
Some of us have voiced critiques of the tendency within the gay community to go ‘straight.’ Not to choose straight partners, but to live straight lives. Whereas if you take people like Judith Halberstam, who talks for another form of temporality and another form of understanding of location, you see that there are certain ways in which the gay and lesbian community has a history of greater freedom when it comes to sexual practices and to individual life paths that are not necessarily conforming to general values in society; respectable and bourgeois values of conduct. You have people like Leo Bersani, who wants to be a ‘homo.’ He doesn’t want to become a housebroken general citizen, but one that embraces his own liberty as a life project.

엘렌 모르텐센
베르겐 대학 여성연구센터
노르웨이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은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이성애자’ 성향으로 나가는 것을 비판합니다. 이성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자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디스 할버스탬 같은 경우, 또 다른 형태의 시간성과 또 다른 형태의 장소에 대한 이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인 사회적 가치(존중할만한 부르주아 행동 가치들)와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는 성적인 실천과 개인적 삶의 행로에 관해서는 게이,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엄청난 자유의 역사를 유지해 온 특정한 방식들을 보여줍니다. 레오 베르사니처럼 ‘호모’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는 잘 길들여진 일반 시민으로 살기를 원치 않고, 자신의 자유를 삶의 한 프로젝트로 수용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Franklin Gil Hernández
Activist and Academician
Bogotá, Colombia
Let us have a debate on marriage, which is an untouchable institution from a social point of view. It is important to request it, but once it has been requested, there must be a debate on the institution. What types of relationships does it propose? Family is a very violent institution. Why defend an institution that is violent? There are other ways of being together that may function well, and perhaps they are more tranquil, more fair.

프랭클린 에르난데스
행동주의자 학자
콜롬비아 보고타
결혼에 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혼은 손에 닿지 않는 제도입니다. 결혼을 요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한 번 요구된 후에는 제도에 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합니다. 결혼은 어떤 유형의 관계들을 제안합니까? 가족은 폭력적인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적인 제도를 방어할까요? 그 외에도 잘 작동하는, 함께 지내는 방법들이 있고, 어쩌면 그런 방식이 보다 평화롭고 공정할 수도 있습니다.

 

María Mercedes Gómez
Political philosopher
Bogotá, Colombia
The reforms generated by same-sex couple marriages do not produce any changes in society; they consolidate a given value; they reproduce the liberal model of marriage and family, and there is absolutely no type of threat to what Butler has called the idea of Nation, which is actually jeopardized by adoption. Adoption renders what is happening in Latin America evident: Some statistics say that 20 percent of the families are traditional families; the rest are other kinds of families, not necessarily homoparental ones. They can be extensive families, or there can be two mothers, or two fathers, or single mothers or fathers. Adoption would imply State justification for something that is already happening, and this generates an unspeakable anxiety, because what is at stake is the notion of social cohesion, the notion of Nation, the notion of a country’s “identity.”

마리아 메르세데스 고메스
정치철학가
콜롬비아 보고타
동성 커플의 결혼으로 이루어진 개혁은 사회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어진 가치를 강화하지요. 이들은 급진적인 형태의 결혼과 가정의 모델을 재생산합니다. 버틀러(Butler)가 말하는 국가 개념에 위협을 가하는 유형은 결코 없습니다. 물론 실제 이것은 입양으로 인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입양은 남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분명하게 잘 보여줍니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은 20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종류의 가족으로 나타납니다. 그 나머지가 반드시 동성 부모의 가정은 아닙니다. 이들은 확장 가족, 즉 두 명의 어머니 또는 두 명의 아버지, 홀어머니 또는 홀아버지를 둔 형태이기도 합니다. 입양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국가적인 정당성을 암시하기도 하고, 또 엄청난 불안을 낳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결합이라는 개념, 국가 개념, 나라의 ‘정체성’ 개념이 위기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Arnfinn Andersen
Gender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Oslo
Norway
Sexuality shouldn’t be a way to prioritize people’s lives you get benefits based on whom you are having sex with, since you are legally recognized as a couple. A better way of organizing this would be based on the needs that people have when sharing a household. We have family relationships that are more complex, but we are supporting only one type of structure: Marriage. Should we replicate the heterosexual model?

아른핀 안데르센
오슬로대학 젠더연구센터
노르웨이
법적으로 커플로 인식된다고 해서, 섹슈얼리티 곧 섹스 상대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당신에게 이득을 주는 이들의 삶을 우위에 두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정을 공유할 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기초한다면 더 나은 조직화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복잡한 가족 관계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혼이라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구조만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성애자의 모델을 따라야 할까요? 

 

Douglas Crimp
Art Critic and AIDS Activist
New York, New York
United States
An enormous shift happened in the the wave of AIDS toward a conservative gay culture where issues like fighting for equal rights to marriage and to fight in the military took precedence over what I think of as a truly queer culture, which is a culture that wants to change how we think about forms of human relations in a much more general sense. I still feel very much what I learned from early second wave feminism, which was the critique of marriage as an institution and how marriage actually served governance as a way of managing the complexity of relations that are possible among people.

더글러스 크림프
미술비평가 에이즈 행동주의자
미국 뉴욕 뉴욕
에이즈의 물결 속에서 보수적인 게이 문화로 나아가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 때 자신이 진정으로 퀴어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평등한 결혼의 권리와 군대에서 싸울 수 있는 권리 같은 쟁점들이 우선시 되었습니다. 퀴어 문화란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간 관계의 형태에 관한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2세대 페미니즘의 초기에 배웠던 것들에 상당히 공감을 하는데, 그것은 제도로서의 결혼에 대한 비판 그리고 결혼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 가능한 관계의 복잡성을 다루는 방식으로서의 가버넌스로 실제 기능했던가에 대한 비판입니다.

One of the greatest gains of the gay liberation movement and the general liberation movements around sexuality and gender was the possibility of rethinking all kinds of questions of affective relationships so that among gay men, for example, if you stop thinking about finding Mr. Right, finding a lover or finding a marriage partner, and rather think about possibly sexualizing friendship, maintaining friendly relations with people with whom you have had a romantic relationship or having fuck buddies, then a whole proliferation of ways of connecting with others.

게이 해방 운동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둘러싼 일반적인 자유화 운동에서 이루어낸 가장 큰 성과는 모든 종류의 애착 관계 문제를 재고찰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게이 남성들 사이에서, 나의 이상형이나 애인 또는 결혼 상대를 찾겠다는 생각을 멈추고, 가능한 성적인 친교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면, 로맨틱한 관계를 가졌거나 섹스 파트너였던 이들과 친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의 방식이 확장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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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ROJECT BY CARLOS MOTTA
Music: Shawn Hansen

Animations: Peter burr
Script: Carlos Motta & Cristina Motta
Drawings: Carlos Motta &HumbertoJunca
wewhofeeldifferently.info

카를로스 모타 프로젝트
음악: 숀 한센

애니메이션: 피터 버
스크립트: 카를로스 모타, 크리스티나 모타
드로잉: 카를로스 모타, 움베르토 윤카
wewhofeeldifferently.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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